전공

[스크랩] 사랑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 「숙영낭자전」(전문, 현대어역)

나비girl 2013. 9. 5. 15:02

한 사람의 매력에 빠져 이 세상 모든 것이 시시하게 보이는 순간 사람들은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마치 갑작스런 사고처럼 우연히,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랑은 시작되고, 합리적 이성 또한 그 기능을 잃게 된다. 사랑은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통제할 수 없고,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져든다.

한 소년이 꿈에서 한 여자를 봤다. 이제 그는 단순히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온종일 그녀를 열렬히 생각했다. 그날 그의 열정은 시작되었으나 고통 또한 함께 시작되었다.

선군은 꿈속에서 본 선녀의 모습이 너무 확연하여 잠을 깨고 난 후에도 그 낭자의 고운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맑고 고운 음성이 귀에 쟁쟁錚錚히 남아 있어 낭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무엇을 잃은 듯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미친 것 같기도 하며 용모가 초췌해지고 안색이 곧 죽어 가는 사람처럼 안 좋게 바뀌었다. …… 백선군은 오로지 그 낭자를 사모하는 일념一念으로 넋을 잃어 만사에 뜻이 없었는지라 그 모습은 참으로 가련하였다. 점점 악화되는 병세 속에서 선군은 마침내 병이 뼈 속 깊이까지 들어 백약百藥으로도 고칠 수가 없게 되었으니 드디어 자리에 드러누워 식음食飮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

전통사회에도 열정적인 사랑이 있었고 자유연애도 존재했지만,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은 중매결혼이나 정략결혼을 반드시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곤 했다. 수많은 가능성을 따져 보고, 평생의 반려를 심사숙고하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현대적인 관습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창작된 「숙영낭자전」은 이러한 통념을 과감히 깨고 파격적인 사랑을 한 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직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삶을 원했던 조선판 로맨스 판타지 소설 「숙영낭자전」 전문을 올린다.

 

화설話說, 고대 소설의 글머리에 흔히 쓰는 말. 곧 술어로서, ‘말하건대, 말하자면’ 등과 같이 사연을 이야기하려고 글머리로 내는 말임. 조선朝鮮 세종대왕世宗大王 때, 경상도 안동 땅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으니, 성은 백이요, 이름은 상군尙君이라 하였다. 부인 정씨鄭氏와 이십 년을 동거하였으나 슬하에 자녀가 없어서 늘 걱정하고, 늘 명산대찰名山大刹에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시기를 지성으로 축원祝願하였다. 그 간곡한 정성으로 기이한 꿈을 꾼 후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가 점점 자람에 따라서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온유하며 문필이 자못 유려流麗하였다.

그의 부모 백상군 부부는 하늘이 내리 주신 이 외아들을 천금인 양 애지중지愛之重之하였고, 이름을 선군仙君이라 하고 자를 현중이라고 지었다. 부부는 아들에게 알맞은 배필을 얻어서 슬하에 두고 재미를 보려고 널리 구혼을 하였으나 알맞은 혼처가 얼른 나타나지 않아 항상 근심으로 지냈다.

이 때 선군의 나이가 열여섯 살 되던 때였다. 봄볕이 따뜻하게 버들가지를 희롱하는 좋은 계절에 선군이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몸이 노곤하여 책상에 기대어 졸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문득 녹의홍상綠衣紅裳, 연두 저고리에 다홍치마라는 뜻으로, ‘젊은 여자의 곱게 치장한 복색’을 이르는 말으로 단장한 낭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두 번 절하고 옆에 앉더니,

“도련님께서는 저를 몰라보시겠습니까?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둘이 천상연분天上緣分이 있기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하였다. 낭자의 말을 듣고 선군은 크게 놀라며 물었다.

“나는 진세塵世, 티끌세상. 속세의 속객俗客이러니와, 낭자는 천상의 선녀仙女인데 어찌 우리 사이에 연분이 있다 하시오?”

이에 낭자가 말했다.

“도련님께서는 본디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선관仙官이셨는데, 어느 날 비를 그릇 내리신 죄로 인간 세상에 귀양을 오셨으니 머지않아 저와 상봉相逢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낭자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선녀는 사라졌으되 그 향기는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선군이 기이하게 여겨 선녀가 사라져 간 허공을 향하여 바라보는 동안에 잠에서 깨어나니 남가일몽南柯一夢, ‘덧없이 지나간 한 때의 행복과 부귀와 영화’를 꿈과 같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선군은 꿈속에서 본 선녀의 모습이 너무 확연하여 잠을 깨고 난 후에도 그 낭자의 고운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고 맑고 고운 음성이 귀에 쟁쟁錚錚히 남아 있어 낭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마치 무엇을 잃은 듯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미친 것 같기도 하며 용모가 초췌해지고 안색이 곧 죽어 가는 사람처럼 안 좋게 바뀌었다.

형용形容이 수척하여 번민하는 기색이 역력해진 선군을 보고 그의 부모가 크게 염려하여 그 연유를 물었다.

“네 병세가 심상치 않으니 무슨 소회素懷가 있거든 숨김없이 말하여라.”

선군은 대답하기를,

“별로 소회는 없사오나 왠지 모르게 심기가 좋지 않아서 그렇사오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하였다. 선군은 서당으로 물러 나와서 잡념을 잊고자 고요히 누웠다. 그러나 마음은 오로지 낭자 생각으로 가득하여 만사에 무심히 지냈다. 그런데 이 때 홀연히 그 낭자가 구름처럼 나타나서 선군의 앞에 와 앉으면서 선군을 위로하였다.

“도련님께서 저를 생각한 나머지 이토록 병을 얻었으니, 어찌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또한 가세 빈한함이 근심되므로 제 화상畵像과 금동자 한 쌍을 드리려고 가져왔사오니, 제 화상을 도련님 침실에 두시고 밤이면 안고 자고, 낮에는 병풍에 걸어 두어 도련님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사이다.”

선군이 너무나 반가와 낭자의 고운 손을 부여잡고 다정하게 속삭이려고 할 찰나에 그만 낭자의 자취는 사라져 버렸다. 깜짝 놀라 잠을 깨고 보니 꿈이었다. 그러나 낭자의 화상과 금동자 한 쌍이 분명히 옆에 놓여 있었다. 선군이 기이하게 여기면서 그 금동자는 상 위에 올려놓고, 화상은 병풍에 걸어 두고 주야晝夜로 한 때도 그 옆을 떠나지 않았다.

이러한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가 세상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모두들 구경하고자 선군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백선군의 집에는 선녀가 갖다 준 기이한 보배가 있다.’

하고 저마다 채단을 가지고 와서 그 화상과 금동자 앞에 바치고는 구경도 하고, 저마다 복을 빌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백선군의 집은 형편이 점점 나아져서 부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선군은 오로지 그 낭자를 사모하는 일념一念으로 넋을 잃어 만사에 뜻이 없었는지라 그 모습은 참으로 가련하였다. 점점 악화되는 병세 속에서 선군은 마침내 병이 뼈 속 깊이까지 들어 백약百藥으로도 고칠 수가 없게 되었으니 드디어 자리에 드러누워 식음食飮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

선군의 그러한 딱한 정상을 동정하여 낭자도

‘선군이 나를 사모한 까닭에 이처럼 병을 얻었는데 내 어찌 가만히 있으리오.’

하고는 선군의 꿈에 자주 나타나서 위로해 주었다.

“도련님이 저를 잊지 못한 나머지 이처럼 병이 드셨으니 저로서는 오직 감격할 따름입니다. 저와의 연분은 아직 때가 멀었으매, 그동안 저 대신으로 도련님 댁의 시녀 매월이 도련님을 모시고 시중들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오니 방수防守, 거처를 지키며 시중 듦를 정하여 저를 보는 듯이 매월을 보시고 적막한 심회를 위로하십시오.”

이에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잠에서 깨고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선군은 그 꿈을 신기하게 여기고, 낭자의 부탁대로 매월을 시첩侍妾, 귀인이나 벼슬아치의 곁에 함께 있으면서 시중드는 첩으로 삼아서 울적한 심회心懷를 얼마간 풀었다. 하지만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애정은 여전히 낭자에게 있을 뿐이었다. 달 밝은 빈산에서 내는 원숭이의 휘파람 소리와 두견새의 불여귀不如歸가 슬피 우는 소리에도, 낭자의 생각으로 애간장이 굽이굽이 녹는 듯하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선군의 괴로운 상사병은 골수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선군의 부모는 아들의 병이 날이 갈수록 점점 위중해 가는 것을 보고 당황하고 초조하여 백 가지 문복問卜, 점쟁이에게 점을 치게 해서 길흉을 물음과 천 가지 약을 쓰는 등 갖은 방법을 다하였으나, 선군의 병이 차도가 없으므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이 때 낭자가 또 생각하기를,

‘도련님의 병세가 저와 같이 위독하여 백약이 무효하니 아무리 천정의 연분이 중하다 하여도 더 기다리다가는 속절없이 되겠다.’

하고 선군의 꿈속에서 현몽現夢하여 가로되,

“우리가 합할 시기가 아직 멀었기로 지금껏 떨어져 있었는데, 도련님께서 그토록 제 생각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시니 제 마음이 편하지 못하옵니다. 도련님이 정히 저를 보고자 하시거든 부디 옥연동玉淵洞으로 찾아오십시오.”

그러고는 역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선군이 잠을 깨고 생각하니 정신이 황홀하여 어쩔 줄을 모르다가, 마침내 옥연동에 찾아가기로 결심을 하고는 부모님 앞으로 나아갔다.

“근일에 소자의 마음이 울적하여 침식이 불안하오니, 명산대천名山大川에 유람하여 심회를 소창消暢하고자 합니다. 옥연동은 특히 산천의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하오니 그 곳에나 수삼 일 구경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만류하였다.

“네가 이제 정말 실성失性한 게로구나. 몸이 그토록 쇠약하여 문 밖 출입도 부자연한 네가 그 험악한 산중에 어떻게 간단 말이냐?”

하지만 선군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졸라대었다. 아들이 소매를 뿌리치고 막무가내로 내달으니 부모도 결국은 승낙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백선군은 한 필 말에 올라 동자 한 명만을 데리고 옥연동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산길은 멀고 험하였다. 산행에 밝지 못한 선군은 옥연동을 찾지 못한 채 길을 잃고 방황하였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선군은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였다.

“밝으신 하늘은 저의 이 정상을 살피시어 옥연동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천만 가지 심회가 교차하는 가운데 한 곳에 이르니 어느덧 해가 기울고 미처 떠나지 못한 새들이 저마다 다투어 보금자리를 찾는 중이었다.

산은 첩첩하여 천봉만학千峰萬壑, 수많은 산봉우리와 산골짜기이요, 물은 잔잔히 흘러서 백곡百曲을 이루고 있었다. 못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불심佛心을 머금었고, 깊은 골짜기에는 모란꽃이 한창 피어 학의 깃털처럼 날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백설白雪같은 나비들이 분분하고, 버들가지 사이로 드나들며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는 가히 편편금片片金이었다. 층암절벽層巖絶壁, 높고 험한 바위가 겹겹이 쌓인 낭떠러지에 걸린 폭포는 은하수를 휘어댄 듯하고, 명사청계明沙淸溪 위에 걸린 돌다리는 오작교를 방불케 하여 외로운 길손의 심정을 헤아리는 듯 하였다.

백선군이 그런 풍경을 좌우로 바라보면서 산 속으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인간 세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선경을 이르는 말이었다. 선군이 이런 풍경을 보자 심신이 자연 상쾌해서 저절로 우화등선羽化登仙, 저절로 새의 깃털이 되어 선경으로 올라감한 것 같았다. 희귀한 자연에 산 모양이 빼어나고, 마음 내키는 대로 그 경개에 들어가니 주란화각珠蘭畵閣, 단청을 곱게 해서 아름답게 꾸민 누각이 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고, 그림 같은 비단 창문이 은은하게 빛나는데, 금자金子로 현판懸板, 글씨나 그림을 새기거나 써서 문 위의 벽 같은 곳에 다는 널조각에 ‘옥연동’이라고 뚜렷이 쓰여 있었다. 선군이 기쁨을 참지 못하여 곧바로 당상堂上으로 오르니, 한 낭자가 불쑥 앞으로 나서며 힐문하였다.

“그대는 어떤 속객俗客인데 감히 선경仙境을 범하였느냐?”

선군이 공손하게 말하기를,

“나는 유산객遊山客, 유람 온 사람으로서 산천 풍경을 탐하다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그만 잘못하여 선경을 범하게 되었사오니 선낭은 나를 용서하십시오.”

하니, 낭자가 정색하고,

“그대는 몸을 아끼거들랑 빨리 이곳에서 물러나라.”

하였다. 선경의 낭자에게 쫓겨나자 선군은 낙심천만하여 생각하되,

‘여기가 분명 옥연동인데 이때를 놓치면 어찌 그리운 낭자를 다시 만나랴?’

하고는, 다시 용기를 차리고 점점 나아가 앉으며,

“낭자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괄시하시나이까?”

하고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 낭자는 들은 체도 않고 방으로 들어간 뒤에 다시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선군은 문득 주저하다가 하는 수 없이 당을 내려갔다.

이 때 낭자가 방에서 다시 나와서 옥면화안玉面花顔, 옥 같은 얼굴에 화사한 기색으로 화란畵欄에 기대어 서서 단순호치丹脣皓齒, 붉은 입술과 흰 이[齒] 즉,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말함를 반쯤 열어 미소 지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백선군을 불렀다.

“낭군께서는 가시지 말고 내 말씀을 들으시오. 낭군께서는 어쩌면 그렇게 눈치도 없으시오? 우리 사이에 제아무리 천정天定 연분緣分이 있더라도 어찌 처녀의 몸으로써 그리 한 마디 말로 쉽게 허락하오리까? 낭군께서는 부디 섭섭한 생각 갖지 마시옵고 다시 올라오소서.”

이 말을 듣고 백선군은 전에 꿈에서만 그리던 낭자가 그 낭자임을 깨닫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장 당상으로 올라가서 앉은 후 낭자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낭자의 얼굴은 틀림없는 화상의 얼굴이었다. 얼굴은 부상扶桑의 보름달이 뚜렷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는 듯하고, 태도는 금분의 모란꽃이 아침 이슬을 흡족히 머금은 듯했다. 두 눈에 머금은 추파秋波, 여자의 은근한 정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눈짓는 맑은 물과 같고, 한 쌍의 눈썹은 봄 산에 비낀 듯하며, 두 개의 성모는 추화에 잠긴 듯하고,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와 같고, 붉은 입술은 앵무단사鸚鵡丹沙, 육방정계에 딸린 진홍색의 광석. 수은과 황의 화합물로 수은 제조 및 적색 채료와 약재 등에 쓰임를 문 듯하니, 그 아리따운 모습이란 가히 독보적인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 할 만하였다. 선군은 마음이 더없이 황홀하여 낭자를 보고 이르되,

“오늘 낭자 같은 아름다운 선녀를 대하니 지금 당장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하고 지금까지 낭자 생각에 잠 못 이루던 그 무수한 밤의 정회情懷,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정, 또는 그런 생각를 고백하자 낭자는 수줍어하면서 말하였다.

“저 같은 여자를 그처럼 생각하여 병까지 얻으셨으니 어찌 대장부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정하심으로 정식으로 만날 기약이 아직도 삼 년이나 남았습니다. 그 때가 오면 파랑새를 중매로 삼고 만나서 육례六禮, 우리나라의 재래식 혼례에서의 여섯 가지 의식를 이루고 백년해로百年偕老를 하려니와, 만일 오늘 제 몸을 낭군에게 허하면 천기天機, 천지조화의 기밀를 누설한 것이 될 것이니 그 죄로 천상에 갇혀 다시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온즉 낭군께서는 오늘 초조한 정념을 가라앉히시고, 삼 년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하니 이에 선군이,

“일각이 여삼추인데, 어찌 삼 년씩이나 기다리겠소? 내가 지금 그냥 돌아가면 남은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고, 죽어서 구천을 방황하는 원혼冤魂,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넋이 될 것이니, 낭자의 일신인들 어찌 온전하리오. 낭자는 나의 이 간절한 정상을 생각하고, 불에 든 나비와 그물에 걸린 고기 처지인 나를 구해 주시오.”

하고 낭자의 손을 잡고 온갖 사유를 들어 애걸하였다. 선군의 정성이 지극하고 또한 그 정상이 가긍한지라. 낭자는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돌려 미소를 지으니, 꽃떨기 같은 얼굴에 화색이 무르익었다. 선군은 낭자의 손을 끌어 잡고 침실로 가서 그 동안 쌓아 온 가슴속의 회포를 마침내 풀었다. 절절하고 황홀한 운우지락雲雨之樂, 남녀가 육체적으로 어울리는 즐거움. 중국 초나라의 혜왕이 운몽에 있는 고당에 갔을 때에 꿈속에서 무산의 신녀를 만나 즐겼다는 고사에서 유래함이 끝난 후, 그 마음에 굳게 맺혀 잊을 수 없는 정은 이루 측량할 수 없었다. 이에 낭자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일어나 앉으며 말하기를,

“이제 이미 제 몸이 부정해져서, 더 이상 이 선경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으니 낭군과 함께 가야겠습니다.”

하고 청노새를 끌어내어 선군과 함께 나란히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자연 추종하는 이가 많았다.

이 때, 선군의 양친은 쇠약해진 아들을 내보내고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좌불안석 잠을 못 이루다가 결국 사람들을 사방으로 풀어서 그 종적을 찾았으나 옥연동에 있는 선군을 어찌 찾을 수가 있겠는가?

 

백상군 부부는 집을 나간 아들 선군의 소식을 알지 못하여 근심 걱정으로 해와 달을 보내던 중, 하루는 말발굽 소리가 문전에 들리더니 뜻밖에 집을 나간 선군이 한 미인을 데리고 이르러 양친에게 뵈이고 인사를 여쭈었다. 어안이 벙벙한 부모가 전후 사정이 궁금해 자세히 물었다.

“그 동안 어떤 곳을 두루 다녔느냐? 네가 집을 나간 뒤에 사방을 찾아 헤매어도 너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 늙은 우리는 연일 문에 기대어 너 오기만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하였다.”

선군이,

“부모님께 그 동안 걱정을 끼쳐 드려 소자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저는 옥연동에 가서 그 동안 마음속에 그리던 낭자를 만났나이다.”

하고, 집을 나간 후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자초지종을 낱낱이 말씀드렸다. 양친은 죽은 줄로 알았던 외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에 아주 즐거워하였다. 한편 선군은 낭자를 집안으로 들여 부모님을 뵙게 하였다.

낭자가 종종 걸음으로 사뿐사뿐 걸어서 부모님께 절을 하니, 부모는 천만뜻밖이라 낭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기품있는 모습과 아리따운 얼굴이 도저히 인간으로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꿈인가 생시인가, 선군의 부모는 더욱 공경기대恭敬期待, 상대를 공경하여 우러러 대함하여 처소를 동별당에 정해 주니, 선군은 낭자와 금슬지락琴瑟之樂을 누리며, 실과 바늘처럼, 물과 물고기처럼 일시도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듯 선군은 낭자와 한시를 떨어지지 않고 있으니 드디어 학업學業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부친은 선군의 장래를 위하여 민망하게 생각하였으나, 본디 귀한 자식인 까닭으로 낭자와의 떨어짐을 권유하면 또다시 상사의 병이 될까하여 그냥 두고 지켜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세월은 유수流水같이 흘러서 어느덧 팔 년이 지났다. 그 동안에 자식 남매를 두었는데, 딸의 이름은 춘앵春鶯으로, 나이 일곱 살이었는데 천성天性이 영혜英慧, 영민하고 지혜로움하고 총명하였다. 아들의 이름은 동춘東春이라 하였는데 나이는 세 살이었다. 특히 동춘은 기풍을 부친 닮고 모습은 모친을 닮아 집안에 화기를 더욱 북돋어주는 보배로운 존재였다.

집안 동편 정원 동산에 정자를 짓고, 화조월석花朝月夕, 꽃피는 아침나절과 달이 뜨는 저녁 무렵에 젊은 부부가 정자에 왕래하며 칠현금七絃琴을 희롱하고 노래로 화답하여 서로 즐기며 서로 돌아보아 맑은 흥취가 도도하였다.

하지만 부모는 늘 아들이 공부에 전혀 뜻이 없는 것을 탄식하였다. 그러던 차에 마침 알성과謁聖科, 조선시대에 임금이 문묘에 참배한 뒤 실시하던 비정규적인 과거시험를 실시한다는 방이 나붙었다. 이것을 계기로 부친은 아들 선군을 불러 놓고 조용히 타일렀다.

“너희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 틀림없도다.”

하면서도

“이번에 알성과謁聖科를 본다는 방이 나붙었으니 너도 꼭 응과應科하라. 요행히 급제하면 네 부모도 영화롭고 조상을 빛내게 되지 않겠느냐?”

하며 선군이 과거길에 오르기를 재촉하였다. 부친의 타이름을 들은 선군은 정좌正坐한 채로 여쭈었다.

“아버님, 불효한 자식 굽어살피소서. 과거며 공명은 모두가 한낱 속물이 탐하는 헛된 욕심이옵니다. 우리 집에는 수천 석 전답田畓이 있고, 비복婢僕, 계집종과 사내종이 천여 명이며, 십리지소택十里之沼澤, 10리나 되는 못과 이목지소호耳目之所好, 아름다운 음악과 여색를 마음대로 하는 처지인데, 무슨 복이 부족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아치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만일 제가 과거를 보려고 집을 떠나면 낭자와는 수개월 동안의 이별이 되겠으니 사정이 절박합니다.”

하고는 동별당으로 돌아왔다. 낭자에게 부친과 주고받은 말을 전하니, 그 말을 듣고 낭자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사랑이 그윽한 눈길로 선군을 타일렀다.

“과거를 보지 않겠다는 낭군의 말씀이 그릅니다. 남아가 세상에 나면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모님을 영화롭게 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낭군은 어찌하여 저 같은 규중처자閨中處子를 연연한 나머지 남아의 당당한 일을 폐하고자 합니까? 이것은 부모에게 불효가 될 뿐더러 그 욕이 마침내 저에게 돌아올 것이니 결코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낭군께서는 재삼 생각하여 속히 과거 행장을 차리고 상경上京해서 남의 비웃음을 사지 않게 하십시오.”

이처럼 충고하면서 또한 과거에 응시할 차림과 여정의 행정을 갖추어 주었다. 행장이 차려지자 낭자는 다시 강경한 다짐을 선군에게 하였다.

“낭군이 이번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낙방거사가 되어서 돌아오시면 저는 결코 살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오니 다른 잡념을 다 버리고 오직 시험에 대한 일념으로 상경하셔서 꼭 급제하여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부모에게 듣던 말을 낭자에게 들으니 선군의 급제는 스스로 더욱 절실하게 생각되었다. 할 수 없이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떠나려 하다가 다시 낭자에게 들려 말하기를,

“당신은 내가 과거 급제하여 돌아올 때까지 부디 부모님 잘 모시고 애들과 함께 평안한 마음으로 기다리시오.”

하고 평범한 말로 이별을 고하였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였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려 하니 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한 걸음에 돌아서고 두 걸음에 돌아보며 연연한 정을 금하지 못하니, 이를 보고 낭자도 중문 밖까지 나와서 먼 길에 몸조심하라고 재삼 당부하면서 슬픔을 금치 못하였다. 선군은 마침내 눈물이 앞을 가려 처절한 정경을 보이면서 사랑하는 숙영 낭자와 이별하였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 날은 종일토록 삼십 리밖에 가지 못하였다. 주막에 들려서 저녁상을 받고도 오직 낭자 생각만 간절해서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여 두어 술 뜨다가 상을 물리치니 하인이 민망히 여겨 근심을 토로하였다.

“식사를 그렇게 안 하시면, 앞으로 천리 길을 어떻게 가시렵니까?”

하니 선군이

“아무리 먹으려 해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으니 어쩌겠느냐?”

하며 길게 탄식할 뿐이었다. 선군은 적막한 주막 방에 앉아 있노라니 더욱 마음이 산란하였다. 마치 낭자가 옆에 있는 듯하여 껴안아 보면 허공虛空뿐이라 허전하기 이를 데 없고, 낭자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여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창밖의 소슬한 바람 소리가 공허한 적막감을 더욱 무겁게 해 줄뿐이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점점 더 잠이 오지 않아 그 허전한 마음에 결국 실신할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낭자 생각이 간절해진 선군은 하인이 잠들기를 기다려 이경 끝에서 삼경 초에 부랴부랴 신발을 둘러메고 날듯이 집에 돌아와, 담을 넘어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에 누워 있던 낭자가 크게 놀라며 일어나 앉았다.

“낭군님, 이 밤중에 어쩐 일입니까? 오늘 길을 떠난 분이 어느 곳에 계시다가 다시 돌아오셨나이까?”

하니 선군이 대답하기를,

“종일토록 겨우 삼십 리를 가서 그곳에 숙소를 정하고 잠을 청하였으나, 다만 그대 생각만 간절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고, 첩첩이 쌓인 비감한 생각을 금치 못하여 밥도 먹히지 않아 도중에 병이 될까 염려되어 한 번 더 그대를 보고 적막한 심사를 가다듬으려 이렇게 되돌아왔소.”

하고 낭자의 고운 손을 이끌어 금침 속으로 끌어들여서 밤이 다 하도록 정회를 풀었다.

이 때 부친 백공白公이 아들을 과거 응시 차 서울로 보내고는 심사가 허전하여 잠을 못 이루다가 도적을 살피려고 청려장靑藜杖, 명아줏대로 만든 지팡이을 짚고 담장 안을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살피고 사방의 동정을 가늠하였다. 그런데 동별당에 이르러 보니, 낭자의 방 안에서 문득 남자의 말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집을 비우고 없는 이 마당에 며느리 방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니 백공이 가만히 듣다가 기절초풍을 면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귀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괴한 생각할 금할 수가 없었다.

‘며느리는 빙옥지심氷玉之心, 얼음같이 차갑고 옥같이 맑은 마음과 송죽지절松竹之節, 송죽처럼 굳은 절개의 여인인데, 어찌 외간 남자와 사통하여 음행淫行, 음란한 짓을 함, 또는 그런 행실한 짓을 할까? 그러나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한 번 알아봐야겠다.’

하고 속으로 불길한 생각을 가지며, 가만가만 별당 앞으로 다가서서 귀를 기울이고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엿들으니, 이윽고 숙영이 낮은 음성으로 말하였다.

“시아버지께서 밖에 와 계신 듯하니, 당신은 몸을 이불 속에 숨기시옵소서.”

또 잠이 깬 듯한 아이를 달래면서 하는 말이,

“아가 아가 착한 아가, 어서 어서 자려무나. 너희 아버지는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영화롭게 돌아오신다. 우리 아가, 착한 아가, 어서 어서 자려무나.”

하고 어루만지거늘 시아버지 백공이 크게 의심하였다. 그러나 며느리의 방 안을 뒤져서 외간 남자를 적발해 낼 수도 없고 하여 그냥 참고 침소로 돌아갔다. 이 때 숙영 낭자는 시아버지가 밖에서 엿듣는 기척을 미리 알았으므로 선군에게 재촉하여 강경히 충고하였다.

“시아버지께서 창밖에 와서 엿보고 가셨으니 이미 낭군이 온 줄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낭군은 제게 연연하지 마시고 어서 서울에 올라가 성공 여부를 헤아리지 말고 과거를 보아 부모님이 바라시는 바를 저버리지 마시고 또 제게도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생각건대 낭군께서 과거 길을 떠나다가 규중처자 하나를 못 잊고 여러 번 왕래하게 된다면 군자의 도리가 아니고, 그것은 장부의 도리가 아니요, 또 부모님께서 그 사실을 아신다면 결단코 저를 요망한 계집이라고 책망하실 터이니 낭군은 전후 사리를 현명하게 헤아려서 속히 상경하십시오.”

선군이 숙영의 말을 옳게 여기고 다시 옷을 주워 입고, 곧 작별하고 담을 넘어 도망치듯이 다시 주막집 숙소로 달려갔다.

그리운 임을 보고자 오가는 길은 천 리가 지척 같고 걸음도 빨라서, 주막에 돌아오니 그 때까지 하인은 잠을 깨지 않고 깊이 자고 있었다.

이튿날 날이 밝아 다시 길을 재촉하여 떠났으나 낭자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도무지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는 발길이 마치 천근 무게와 같이 느껴지고, 또한 뒷머리를 숙영 낭자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아 하루 종일 겨우 십 리 길을 걷다가 해를 넘기고 말았다. 다시 주막에 숙소를 정하고 달 밝은 객창에 홀로 적막히 앉아 심사를 달래려니, 숙영 낭자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천만가지로 고민하다가, 결국 울적한 정회를 금하지 못해 또다시 표연히 집으로 돌아갔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또 담장을 넘어 몰래 낭자의 방으로 들어가니 낭자가 크게 놀라 일어나 앉으며 낭군을 꾸짖었다.

“낭군께서는 어젯밤에 제가 간곡히 말씀드린 것을 듣지 않고 오늘밤에 또 돌아왔으니 웬일입니까? 이처럼 저를 애틋하게 생각해 주시는 정의情誼, 사귀어 두터워진 정는 고마우나 이런 일로 인하여 천금千金 같은 귀체貴體, 편지 등에서 상대방을 높여 그의 몸을 이르는 말가 객중에서 병을 얻으면 어쩌시렵니까? 지금 순간부터는 제 생각일랑 딱 잘라 내시고 어서 떠나시어 과거에 늦지 않도록 상경하소서.”

숙영 낭자가 강경한 표정으로 말하였으나 그 목소리는 비가悲歌처럼 떨렸고 그녀의 눈망울에는 알알이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나인들 어찌 그럴 줄을 모르겠소만, 낭자를 하룻밤만 보지 못하여도 미칠 것 같은 심사心思에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소. 과거를 치르지 못하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내가 죽는다 해도 좋으니 결코 낭자와 떨어져서 지낼 수는 없소.”

“낭군께서는 정말 딱하신 분이오이다. 정 그러하오시면 앞으로는 제가 낭군님이 가시는 숙소마다 밤으로 찾아가서 위로하여 드릴 것이오니 걸음을 늦추지 마소서.”

“그대는 규중의 아녀자로서 걸음도 느릴 터인데 어찌 점점 멀어져 가는 서울길을 밤마다 나를 찾아 왕래할 수가 있겠소?”

숙영 낭자는 그토록 지극히 사랑해 주는 낭군의 정성이 고마워, 머뭇거리는 낭군의 몸을 이끌어 서둘러 금침으로 모시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앉아 한 장의 그림을 그려 주었다.

“이 화상은 저의 모습 그대로이오니, 길을 행하시다가 제가 보고 싶어지시면 꺼내 보시고 심회를 푸사이다. 그리고 만일 이 화상의 빛이 변하거든 제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 줄로 알아주소서.”

하고 눈물을 뿌리며 밤이 새기 전에 선군을 집에서 떠나 보내려고 달래었다.

이 때 선군의 부친 백공은 어젯밤 며느리의 행실이 괘씸하여 울분을 참고 있다가 오늘 밤에도 발소리를 죽이고 동별당으로 가서 창 밑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엿들었더니, 해괴한 일은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오늘밤에도 벌어지고 있었다. 숙영의 음성이 나직이 들리다가 가끔씩 남자의 음성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가느다랗게 흘러 나왔다.

‘이런 고약 망측스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이런 해괴한 일이 우리집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웬 망신인가? 내 집의 담이 저렇듯 높고, 상하 이목이 번다하여 외간 사람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데, 어찌 외간 남자가 남편 없는 틈을 타서 밤마다 드나들까? 수일을 두고 낭자의 방에서 남자의 소리가 나니 이는 필경 간특한 놈이 낭자와 짜고 밤으로 통정通情을 하는 게 분명하다. 저 아이가 내 집 며느리가 되어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제 남편에게도 유달리 다정하였는데, 이처럼 간통姦通의 흉죄凶罪를 범하다니 실로 사람 마음의 옥석玉石은 분간키 어렵구나.’

하고 의심이 짙어졌다. 백공이 그날부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흉한 소문이 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가 결국은 부인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아직 그 해괴한 사실은 진가가 확실하지 않으나, 만일에 이런 불미不美한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양반의 집에서 체통이 어떻게 되겠소? 이 일을 장차 어찌 했으면 좋겠소?”

하였다. 부인이 말하기를,

“그건 영감께서 잘못 들은 것일 겁니다. 우리 며느리의 행실은 평소 백옥 같아 그런 행동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공연한 누명을 씌우지 마십시오. 그토록 의심이 되시오면 내막을 더 자세히 알아보사이다.”

하였다. 그러자 백공이,

“나 역시 믿고 싶지 않으나, 내 귀로 이틀 밤이나 들었기에, 며느리를 불러 나무랄까 하면서도 괜한 누명을 씌워 시아비 체면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주저하고 있었소. 아무래도 오늘은 며느리를 불러서 해문解問하여 그 진상을 알아봐야겠소.”

하며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러시다면 같은 말을 물으시더라도, 의심을 보이는 질문은 하시지 마시고 넌지시 떠보시옵소서.”

부인은 앞일을 걱정하여 남편에게 조심하도록 당부하였다. 이리하여 시부모는 시비侍婢, 곁에서 시중드는 여자 종를 시켜 숙영 낭자를 시부모의 처소로 불러들였다.

“선군이 상경한 후로 집안이 적적해서 혹시 도적이나 들지 않을까 하여 후원을 두루 돌아다니며 살피다가, 네 방 근처에 갔을 때 방안에서 웬 남자의 음성이 은은히 들리기에 이상하게 여겼으나,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설마 그럴 리가 있으랴?’라고 내 귀를 의심했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또 가서 들으니 또 남자 음성이 낭자하니 이 아니 괴이하냐? 너를 차마 의심하는 것은 심히 마음이 괴로우나, 어디 한 번 사실대로 말해 다오.”

숙영이 크게 놀라 안색이 변하였으나 이내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연하게 말하였다.

“밤이면 늘 잠을 설치는 춘앵과 동춘을 데리고 매월이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지냈거늘, 외간 남자가 어찌 제 방에 와서 이야기를 하였겠습니까? 저로서는 천만 뜻밖의 말씀입니다.”

백공이 듣고 저으기 마음이 놓이나, 일이 하도 괴이하여 며느리를 돌려보내고, 시녀 매월을 즉시 불러서 문초問招, 죄인을 신문함을 이름하였다.

“네가 어제 그제 이틀 밤에 아씨 방에서 시중을 들었느냐?”

하니 매월이,

“요사이 소녀의 몸이 곤하여 이틀 동안은 밤중에 가 뵙지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매월의 대답을 듣고 백공은 더욱 수상히 여겨 매월을 꾸짖기를,

“정말 그게 사실이냐? 요사이 괴상한 일이 있어서 아씨에게 물은즉 밤으로는 너와 함께 자며 수작하였다는데, 너는 아씨 방에 가지 않았다 하니 두 사람의 말이 서로 같지 않구나. 이는 필시 아씨가 외인과 사통한 것이 분명하다. 너는 앞으로 아씨의 동정을 비밀리에 살펴서, 아씨 방에 왕래하는 놈을 잡아서 알리라. 만약 이 말이 아씨에게 누설漏泄된다면 너는 살지 못하리라.”

하고 비밀리에 엄명嚴命을 내렸다. 매월은 목숨이 아까워서 주야로 아씨 방을 지켰으나, 외간 남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없는 도적을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는가? 백공의 엄명은 공연히 매월에게 간계奸計를 꾸미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결과가 되었다. 매월은 늘 숙영 낭자에게 심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숙영 낭자가 선군을 만나 이 집에 정식 부인으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꿈속의 숙영을 잊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정회를 풀기 위하여 선군이 임시 종첩종으로 부리던 여자를 올려 앉혀서 된 첩으로 사랑하였다. 그러나 숙영 낭자가 정식 부인으로 들어온 다음부터는 종첩 신세에서 하락되어 단순한 시비侍婢로서 소박疏薄, 아내를 박대하거나 내쫓음을 당한 몸이 되었다. 이렇게 쌓인 몇 년 동안의 질투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매월에게 주어진 것이다. 바야흐로 서방님이 없는 이 기회에 영감마님이 숙영 낭자의 부정한 행실을 의심하였으니, 바로 이때를 이용한다면 숙영 낭자를 간통죄로 몰아 없애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매월은 독한 마음을 먹고 그 동안 마음속에 쌓아 온 질투의 성을 허물기로 결심하였다.

 

인생에 있어서 기회란 늘 그리 흔하지 않은 법, 매월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숙영 낭자를 없애어 버림으로써 그 동안 뱃속 깊이 사무친 질투의 원한을 풀고자 하였다.

‘선군이 낭자와 작배作配한 뒤로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으니 어찌 애달프지 아니한가? 이번 기회에 낭자를 간통죄로 몰아서 나의 해묵은 원한을 풀리라.’

매월은 아씨 몰래 금은 수천 냥을 훔쳐내어 동류同類들을 모아 의논하여 말했다.

“금은 수천 냥을 줄 것이니 누가 나를 위해서 묘계를 행해 주겠소?”

무뢰배무뢰한, 또는 그 무리 한 명이 매월의 말을 듣고 재물에 혹하여 팔을 걷고 쑥 나서서,

“내가 무엇이든지 해 내겠다.”

하니, 그 자의 이름은 도리라고 하는 힘깨나 쓰고 성정이 흉완하고 호방한 놈이었다. 매월은 기뻐서 도리를 이끌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말했다.

“내가 너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댁의 선군 서방님이 나를 소첩으로 삼고 전에는 정을 두텁게 대하더니, 낭자를 본실로 데려온 후에는 팔 년이 되도록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종년으로만 상대하니, 내 마음이 어찌 절통切痛하지 않으랴? 그래서 낭자를 모함하여 이 집에서 내쫓아 분풀이를 하려고 하니,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착오 없이 해야 한다.”

“누구 부탁인데 소홀히 하겠소? 더욱이나 돈까지 많이 준다는데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 낼 테니 염려 마시오.”

도리가 이렇게 거듭 다짐하니, 매월은 이날 밤에 동별당으로 통하는 뒷문을 열어 주면서 귓속말로 말하기를,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영감 처소處所에 가서 적당히 말하면, 영감이 격분하고서 네가 낭자의 간부姦夫인 줄 알고 잡으러 올 것이니, 너는 그때 즈음 영감이 보도록 낭자의 방에서 나오는 척하고 이 후원 문을 열고 나가되 부디 소홀히 하지 마라.”

“그런 염려일랑 말고 어서 행동이나 개시하라.”

“그럼 잘 부탁하네.”

하고, 매월이 영감 처소로 달려가서 여쭈기를,

“상공께서 저더러 동별당 동정을 잘 살피라는 분부를 하시기에 밤마다 잠을 자지 아니하고 지켰더니, 과연 어떤 놈이 낭자 방으로 몰래 들어가서 추잡한 희롱을 하고 있어 서둘러 고하옵니다. 제가 어떤 놈이 들어온 줄 알고는 창문 뒤로 가서 아씨 방 안의 거동을 살짝 엿들으니 끔찍한 흉계를 꾸미고 있어 놀랐나이다. 아씨가 그놈에게, ‘서방님은 부모님의 영을 거역하지 못해 과거를 보러 갔지만 틀림없이 낙방거사 되어 돌아올 것인즉, 서방님이 오거든 죽여 버리고 재물을 도적질해서 같이 도망가서 살자.’고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그렇게도 현부인의 탈을 쓰고 오신 아씨가 그토록 변심을 하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옵니다. 하오나 영감마님께서 현명하옵신 까닭에 그런 징조를 미리 아시고 저에게 증거를 잡으라고 분부하셔서 천만다행이옵니다. 아씨 방에 든 저 놈을 그냥 두었다가는 서방님께서 어떤 변을 당하실지 모르겠사오니 어서 바삐 영감마님께서는 처리하시옵소서.”

백공이 이 말을 곧이듣고는 노기가 대발하여 칼을 빼들고 후원으로 달려가자, 과연 어떤 놈이 낭자의 방에서 문을 열고 나와 놀란 토끼마냥 뛰어서 담장을 넘어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백공이 괴한의 뒤를 쫓았으나 비호같이 빠른 괴한의 뒤를 따를 수가 없었다. 억울하게 잡지 못하고 분기만 간직한 채 다시 처소로 돌아와서 밤을 앉아 새우고,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릴 때가 되어 비복들을 불러서 좌우에 세우고 차례로 엄중히 문초하였다.

“내 집의 담이 높아 외인이 임의로 출입할 수 없는데 낭자 방에 밤마다 수상한 놈이 자유로이 출입하니, 부끄러운 추궁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은 너희들 중에 있으니 숨김없이 고하라. 사실대로 자백한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거니와 만일 숨기려고 한다면 끝내 죽음을 면하지 못하리라. 그러니 그리 알고 지금 당장 자백하라.”

그러나 비복婢僕, 계집종과 사내종들이 무슨 죄가 있으리오. 천만 뜻밖의 호통에 그만 어리둥절할 뿐 모두가 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급기야는 낭자를 잡아오라고 명하였다.

“너희들은 냉큼 가서 낭자를 이리 잡아 오너라.”

영감의 불호령이 추상 같은지라. 매월 이년이 제일 먼저 옳거니 생각하고 동별당으로 뛰어가 문을 열고 소리를 크게 지르며 말하였다.

“아씨는 무슨 잠을 이렇게 태평하게 자고 있소이까? 지금 상공께서 아씨를 잡아 오라 하시니 어서 가 보시오.”

숙영은 깜짝 놀라 일어나며,

“이 깊은 밤중에 무슨 일로 집안이 이리 요란스러우냐?”

하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달려온 비복들이 문 밖에 가득하였다. 낭자가 다시 묻기를,

“너희들 무슨 일이냐?”

하니 한 노복이 앞으로 쑥 나서면서 퉁명스럽게 쏘아대며 대답하기를,

“아씨는 도대체 어떤 놈과 간통하다가 공연히 애매한 우리들만 경을 치게 합니까? 죄 없는 우리들 더 이상 경 치게 하지 마시고 어서 가서 바른대로 말하시오.”

하고 상전 대접은 간 곳 없이 구박이 자못 자심하였다. 뜻밖에 천만 몽매 밖의 모욕을 종놈들에게 당한 숙영 낭자는 넋이 빠진 듯 간담이 서늘해졌다.

어리둥절해 하는 낭자에게 비복들이 달려들어 어서 가라고 재촉이 성화같았다. 낭자는 옷맵시를 가다듬고 시부모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리며 떨리는 음성으로 여쭈었다.

“제가 무슨 죄가 있기에 밤중에 이런 꾸중으로 부르셨습니까?”

그러자 백공이 크게 노하여,

“수일 전부터 너에게 수상한 일이 있기에 너에게 물었더니 네 말이 선군이 떠난 후 적막하여 매월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고 하기에 내 반신반의로 매월을 불러서 힐문하니 매월이는 요사이 일체 네 방에 가지 않았다고 하니 어인 일이냐? 이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는 일일 것 같아 여러 날을 잘 살펴온즉 분명 어떤 놈이 네 방에 출입하는 것이 틀림없거늘 네 무슨 얼굴을 들고 변명하려 드느냐?”

하였다. 낭자가 너무나 기가 막혀서 울면서 변명하였다.

“아버님께옵서는 어찌 그런 무언誣言을 곧이듣고 노비들에게까지 이런 봉변을 보게 하시나이까?”

숙영 낭자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흐느껴 울자, 백공이 크게 꾸짖어 말했다.

“닥쳐라! 내 귀로 직접 듣고 내 눈으로 직접 본 일인데, 네가 끝끝내 나를 속이려고 하니 어찌 통해痛駭치 아니하랴? 양반의 집에 이런 해괴한 일이 있기는 드문 법, 실로 망측한 변괴다. 네가 상통한 놈의 성명을 빨리 대라.”

시아버지의 호령이 늦가을 서리만큼이나 차갑고 매서웠다. 그러나 죄 없는 숙영 낭자는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무리 시부모님 간택으로 육례를 이루지 못한 며느리라 할지라도 어찌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십니까? 이처럼 억울한 일을 맞이하여 제가 억울한 누명을 발명發明하기도 창피하오니 아버님께서 자세히 조사해 보십시오. 이 몸이 지금 비록 인간으로 있사오나, 저는 빙옥氷玉 같은 정절貞節로 살아왔나이다. 어이 이런 더러운 말씀을 하시나이까? 영천수潁川水, 중국의 은사 허유許由가 요堯나라 임금으로부터 양위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를 씻었다는 전설의 강물가 멀어서 귀를 씻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억만 번을 죽는다 하여도 사실에 없는 일을 어찌 여쭈오리까?”

시아버지 백공은 더욱 노기가 충천하여 비복을 호령하여 낭자를 결박하라고 명하니, 비복들이 일시에 달려들어서 몸을 묶고 머리를 산발하여 층계 아래 꿇어 앉혔다.

단정하고 우아하여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기품을 늘 가지고 있던 낭자가 졸지에 더러운 죄인으로 몰려 학대받는 광경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가련하였다. 백공이 크게 노하여,

“네 죄상은 만 번 죽여도 아깝지 않으니, 너와 사통한 놈의 성명을 빨리 대라.”

하니 숙영 낭자는 대답 대신 흐느껴 울기만 하였다. 백공은 비복을 시켜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질을 하라고 호령하였다. 사정을 두지 않고 다그치며 매질을 하니 낭자의 백옥 같은 귀밑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요, 옥 같이 흰 살결에는 유혈이 낭자하였다. 낭자는 악형의 고통을 참으며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정신을 차리고 말하였다.

“지난 낭군이 길 떠난 날 밤과 이튿날 밤 두 번, 낭군이 겨우 삼십 리쯤 가다가 숙소를 정하였으나, 저를 잊지 못해 밤중에 집으로 몰래 돌아왔나이다. 이에 제가 한사코 타일러서 도로 보내었으나 제 어린 소견으로는 시부모님께 꾸중을 들을까 겁이 나 지금까지 고하지 않고 있었더니, 조물造物이 그것을 밉게 여기시고 귀신이 그것을 시기해서, 이런 씻지 못할 누명을 입힌 듯하옵니다. 지금에 와서는 어찌 해명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밝은 명천은 소소히 살펴 아시오니 아버님께서는 그런 사실과 저의 정상을 다시 헤아려 주십시오.”

그러나 한 번 눈과 귀로 확인하고 의심한지라, 백공은 점점 더 노하여 매를 든 비복을 독려해서, 헤아려가며 혹독한 매질을 가하였다. 낭자는 참을 수 없는 매 아래서 하는 수 없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호소하였다.

“아아, 공명한 창천이여! 무죄한 이 내 마음을 굽어 살피소서. 오월비상지원五月飛霜之怨, 오월에 서리가 나릴 원한과 십년불우지원十年不雨之怨, 십년을 원망해야 할 원한을 뉘라서 풀어주겠습니까?”

하고 엎어져서 기절하고 말았다. 이 참상을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울면서 영감에게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엎지른 물은 그릇에 다시 담지 못한다 합니다. 영감은 자세히 모르시고 백옥같이 티 없는 정절한 며느리를 억울하게 음행淫行의 죄로 포박捕迫하시니, 만약 며느리의 무죄가 밝혀졌을 때 무슨 면목으로 현부賢婦를 대하려 하시나이까?”

하고 뜰 아래로 뛰어 내려가서 낭자를 부여안고 대성통곡大聲痛哭하였다.

“너의 송백 같은 절개는 내가 잘 알고 있다. 오늘 이런 변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니 어찌 지극히 통탄치 않으랴?”

하니 낭자가 절박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옛말에도 음행의 소문은 씻기 어렵다 하오니, 동해의 물로도 씻지 못할 이런 누명을 쓰고 제가 어찌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하고 통곡하였다. 시어머니 정씨가 낭자를 가엾게 여기고 갖은 말로 무수히 위로하고 타일렀으나, 낭자는 끝내 듣지 않고 문득 바른 손에 옥잠玉簪을 빼어 들고 하늘을 우러러 절을 한 다음 빌었다.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황천皇天은 굽어살피소서. 제가 만일 외간 남자와 간통한 일이 있거든, 이 옥잠을 제 가슴에 박히게 하시고, 만일 애매한 누명이거든 이 옥잠을 저 섬돌에 박히도록 영험靈驗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옥비녀를 공중으로 높이 던지고 땅에 엎드렸다. 이윽고 그 옥잠이 떨어지면서 섬돌에 깊이 박혔다. 하늘이 심판한 이 놀라운 기적을 보고, 대번에 상하 모든 이가 대경실색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낭자의 원통하고 억울함을 알게 되었다. 백공이 자기도 모르게 버선발로 마당에 내려가 낭자의 손을 잡고 빌며 말했다.

“늙으니 주착이어서 착한 며느리를 모르고 네 정절을 의심하여 이처럼 망령된 일을 저질렀으니, 내 허물은 만 번 죽어도 죄를 씻지 못하리라. 바라건대 너는 나의 용렬함을 용서하고, 모든 일에 안심하도록 하라.”

그러나 낭자는 슬피 통곡하면서 말하기를,

“제가 이런 흉측한 누명을 쓰고 어찌 차마 세상에 머물러 살으오리이까? 다만 빨리 죽어서 아황여영娥皇女英, 중국 태고 때의 성제聖帝 요堯의 딸. 둘이 함께 순舜에게 시집가고, 순이 죽은 뒤에 상강湘江에 빠져 죽었다 함.의 자취를 좇으려 합니다.”

하니 삶의 의욕이 전혀 비치지 아니하였다. 백공은 더욱 놀라 백방으로 며느리를 위로하여 말했다.

“자고로 현인군자도 혹 참소讒訴, 남을 헐뜯어서 없는 죄를 있는 듯이 꾸며 고해 바치는 일를 당하며, 현부賢婦 열녀烈女도 혹 누명을 얻는 법이다. 너도 일시의 운액運厄을 만났던 것으로 알아 너무 고집하지 말고 노부老父의 망령된 언동言動을 용서하여다오.”

시어머니 정씨도 낭자를 부축해서 동별당으로 데리고 가 입이 닳도록 위로하였다. 하지만 낭자는 눈물을 흘리며 한숨만 짓다가 죽기를 작정하고 시어머니 정씨에게 가로되,

“저 같은 계집이라도, 악명惡名이 세상에 퍼졌는데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낭군이 돌아오시면 서로 대할 낯이 없습니다. 다만 죽음으로써 세상사를 잊고자 하오니 말리지 마옵소서.”

하고 목놓아 흐느끼니, 진주 같은 눈물이 옷깃을 흥건히 적시었다. 시어머니 정씨가 그 참혹한 정상을 보고는,

“네가 만일 죽는다면, 선군도 결단코 너를 따라 자결할 것이니 이런 답답하고 절통한 일이 어디 또 있으랴?”

하고 탄식하며 침소로 돌아갔다. 이 때 춘앵이 모친의 슬퍼하는 형상을 보고 울면서 말하였다.

“어머니, 죽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거든 원통한 사정이나 알려드리고 죽든지 살든지 하세요. 만일 이제 어머니가 죽으면 동춘이는 어떻게 하며 저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요?”

하고 모친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세요.”

하며 방안으로 끌여들였다. 낭자는 마지못하여 방으로 들어가서 춘앵을 옆에 앉히고 동춘에게 젖을 먹인 뒤에 채복彩服을 꺼내서 입었다. 낭자는 슬퍼하면서 춘앵에게,

“춘앵아,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이 어미는 결국 죽어야 할 몸이다.”

이러고는 자결할 것을 결심하였다. 숙영 낭자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면서 딸 춘앵에게 일렀다.

“나는 이제 죽거니와, 네 아버지가 천 리 밖에 있어 내가 죽는 줄도 모르니, 마지막 죽어 가는 마음조차도 의지할 곳이 없구나. 나의 사랑하는 딸 춘앵아, 이 백학선白鶴扇은 천하에 다시없는 가보家寶로 추울 때 부치면 더운 기운이 나고 더울 때 부치면 찬바람이 난단다. 이 어미가 죽기 전에 너에게 남겨 주는 것이니 잘 간수하였다가, 네 동생 동춘이 자라거든 주어라. 아아, 슬프다. 흥진비래興盡悲來, 흥이 다 되면 슬픔이 이름요,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세상의 상사常事라 하지만, 이 어미의 팔자가 기험하여 천만 뜻밖에 누명을 쓰고 너의 부친을 다시 보지 못하고 황천皇天의 원혼이 되니, 나인들 어찌 편하게 눈을 감겠느냐? 하물며 너희 남매를 두고 어찌 죽으리오? 가련하구나, 춘앵아. 나 죽은 후에 너무 슬퍼하지 말고, 동생 동춘이를 보호하여 잘 있거라.”

하고 유언 삼아 탄식 삼아 구구절절이 눈물을 뿌리던 숙영낭자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아직 나이 어린 춘앵은 그의 어미를 부여안고는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어머니가 우는 소리에 제 간장이 끊어지는 듯 하니 제발 울지 마세요.”

하고 춘앵은 소리내어 통곡하다가 기진맥진하여 그만 기절한 어머니를 안은 채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후 숙영 낭자가 정신을 차려 일어나 보니, 어린 춘앵이가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어린 것이 너무나 가엾고, 또한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 너무나도 분한 마음이 들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낭자는 지극히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분함이 가슴에 가득히 맺혀,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죽어서 누명을 씻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잠이 든 딸이 깨어나면 분명히 죽지 못하게 말리리라 생각하여 딸이 깨지 않도록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한탄하였다.

“불쌍한 춘앵아. 나를 그리워하면서 너희들은 어찌 살아갈까? 가련타 춘앵아. 너희 남매를 두고 어이 마음 편히 가리. 애달프다. 이제 나에게 십대왕十大王이나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소서.”

하고

“춘앵아, 동춘아, 잘 있거라.”

하면서 눈물을 훔치고 원앙침을 깔았다. 그 위에 단정히 앉아 섬섬옥수를 들어 비수匕首, 날이 썩 날카롭고 짧은 칼를 잡고 가슴을 힘껏 찌르니 이윽고 숙영 낭자는 엎어지면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자 문득 태양도 빛을 잃고 천지가 어두워지면서, 천둥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동하였다. 춘앵이 깜짝 놀라서 깨어 보니, 모친이 가슴에 칼을 꽂고 유혈이 낭자한 채 금침 위에 누워 있었다. 소스라쳐 놀라 떨리는 손으로 모친의 가슴에 꽂힌 비수를 잡아 빼려고 하였으나 빠지지 않았다. 춘앵은 모친의 얼굴에 낯을 비비면서 하늘과 땅을 원망하며 대성통곡大聲痛哭하였다.

“아이고 어머니, 일어나오. 이것이 웬일입니까? 하늘도 무심하세요. 불쌍한 우리 어머니, 우리 남매를 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 남매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란 말입니까? 어린 동춘이가 어머니를 찾고 울면 무슨 말로 달래야 한단 말입니까? 어머니가 차마 어찌 이런 일을 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고 호천곡지號天哭地하며 망극애통해 하니, 어린 춘앵의 비참한 정상에 철석같은 간장이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고, 토목심정土木心情이라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백공 부부와 비복들이 놀라서 뛰어 들어와 보니, 낭자가 가슴에 비수를 꽂고 누었거늘 창황망조蒼黃罔措, 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하여 칼을 잡아 빼려고 하였으나 끝끝내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쩌지를 못하고 모두들 곡소리만 하였다. 이 때 철모르는 동춘이 잠에서 깨어 모친이 죽은 줄도 모르고 젖을 먹으려고 죽은 모친의 몸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춘앵이 동생을 달래며 밥을 주어도 먹지 않고 젖만 먹으려 하거늘 춘앵이 동춘을 안고 울면서,

“가여운 내 동생 동춘아, 우리 남매도 차라리 어머니를 따라 죽어 지하에 가자.”

하고 동생을 끌어안고 통곡하니, 그 정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삼 사일이 지난 후에 시부모가 서로 의논하기를,

“며느리가 이렇게 참혹하게 자결하였으니, 선군이 과거를 보고 돌아와서 며느리의 가슴에 칼이 꽂힌 것을 보면, 우리가 모해하여 죽인 줄로 오해하고 저도 또한 죽으려 할 것이니, 선군이 오기 전에 한시바삐 낭자의 시체를 장사지내는 것이 좋을까 하오.”

하고, 숙영의 방에 들어가서 염을 하려고 하였으나 시체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서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서 움직여 보려고 무수히 애를 썼으나 시체는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결국 백공은 ‘이것이 무슨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초조하게 번민할 따름이었다.

이즈음에 선군은 아내에 대한 그리운 생각을 한시도 잊지 못하고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가, 낭자의 충고로 겨우 마음을 달래어 가까스로 상경했다. 선군은 여관을 잡아 숙소를 정하고 과거 날을 기다렸다. 그 날이 되자 팔도 각처에서 선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과거장으로 향했다. 선군도 시지試紙를 옆에 끼고 춘당대春塘臺에 가서 현제판懸題板을 바라보니 ‘선제편배’라 되어 있었다. 선군이 한 번 보더니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글을 지어서 맨 먼저 상감께 올렸다.

많은 선비들이 글을 지어 바치자, 상감께서 시관들과 더불어 여러 문장을 뽑아 검토하다가 선군의 글을 보시고는 무수히 칭찬하시면서,

“훌륭하도다. 이 사람의 글은 그야말로 이태백의 문체요, 조맹부의 필법이도다.”

하시고 글의 한 자 한 자 비점批點과 관주貫珠를 주시고 장원을 시킨 후에 성명의 비봉秘封을 떼어 보니, 경상도 안동에 사는 백선군이었다. 상감이 선군을 불러서 칭찬하시고 곧장 승정원 주서의 벼슬을 내렸다. 선군은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승정원에 입작入爵하였다. 이 때 이 기쁜 소식을 시골에 전하는 것은 물론 낭자와 이별한 지 오래되어 회포가 간절하였다.

선군은 장원급제하고 벼슬을 제수받은 사실을 시골에 기별하기 위해 노부모와 낭자에게 편지를 써서 노비에게 주었다. 하인이 편지를 가지고 여러 날 만에 시골에 다다라 선군의 부친과 숙영 낭자에게 각각 전하여 올렸다. 백공이 황급히 편지를 뜯어보니,

‘소자 다행히 천은을 입어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승정원 주서를 제수 받아 방금 입작入爵하였사오니, 감축무지感祝無地하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뵈올 일자는 금월 보름께나 될 것이오니 그리 아옵소서.’

라고 쓰인 반가운 기별이었다. 그리고 이미 죽은 낭자에게 온 편지를 시어머니 정씨가 받아들고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에그, 가여운 춘앵아, 동춘아! 이 편지는 네 아비가 네 어미에게 보낸 편지니 잘 간수하여라.”

하고 방성통곡하며 손녀 딸 춘앵에게 편지를 주었다. 춘앵이 편지를 가지고 모친 빈소殯所에 들어가서, 아직 그대로 모셔 둔 모친 시신을 흔들면서 편지를 펴 들고 통곡하였다.

“어머니, 어서 일어나세요. 아버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아버님이 장원급제하여 승정원 주서가 되셨다 하는데 어머니는 왜 일어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어머니가 그동안 아버님 소식을 몰라서 주야로 걱정하시더니, 오늘 이 기쁜 편지가 왔는데 왜 반겨 주지 않습니까? 나는 아직 글을 몰라 어머니 앞에서 읽어 드리지도 못하니 답답하옵니다. 어머님, 아이고 어머님.”

한참을 울던 춘앵은, 할머니에게로 가서 그 손을 끌어 잡고,

“할머니, 이 편지를 어머니 앞에서 읽어 주시면, 어머니 혼령이라도 감동할 것 같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조모 정씨가 어린 손녀의 말에 눈물을 훔치면서 마지못하여 낭자의 빈소에 가서 아들이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주서主書 백선군은 이제 한 장 글월을 낭자에게 부치나니, 그 사이에 두 분 부모님 모시고 평안하며 춘앵, 동춘 남매도 아무 탈 없이 잘 있는지요? 나는 다행히 용문龍門, 등용문. 뜻을 이루어 크게 영달함에 올라 벼슬길에 들었으니 천은天恩이 망극할 뿐이오. 다만 그대와 이별하고 천 리 밖에 있으매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오. 그대의 용모가 눈에 암암하고 그대 음성이 귀에 쟁쟁하오. 달빛이 뜰에 가득하고 두견새가 슬피 울며 발을 재촉할 적에 문 밖에 나가 홀로 서서 고향을 바라보니, 운산雲山은 만중萬重이요, 녹수綠水는 천리구려. 새벽녘 달이 기울고 찬바람이 외기러기 울음을 실어 적막함을 더 해 줄 때 반가운 낭자의 소식을 기다렸더니, 창망한 구름 밖에 소슬한 풍경뿐 그대의 소식은 오지 않는구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귀뚜라미 소리가 산란하니 운우양대雲雨陽臺, 초왕楚王이 무산녀와 교정交情한 언덕. 무산녀는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아래 내린다고 하였다. 여기서 운우雲雨는 신녀神女의 미칭美稱으로, 또 남녀의 교정交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에 초목들 바람소리도 쓸쓸하구나. 아아, 슬프구려. 나는 오로지 잘 있거니와 한 가지 슬픈 것은 낭자가 준 화상이 요새 날로 변색하니 필경 무슨 연고가 있을 것 같아 불안한 생각에 식불감미食不甘味하고 침불안석寢不安席이요. 흥진비래는 고금상사라, 낭자에 대한 궁금한 마음에 일각이 삼추三秋 같으나, 벼슬에 매인 몸이라 뜻대로 곧 달려가지 못하니 심히 안타까울 뿐이오. 비장방費長房, 후한後漢 사람으로 호중선壺中仙에게서 부符를 받아 귀신을 채찍으로 부리는 능력을 얻었으나, 부符를 잃은 뒤 귀신에게 살해되었다의 선죽장仙竹杖, 비장방費長房이 귀신을 마음대로 부리던 채찍 지팡이을 얻었으면, 조석으로 왕래하련마는, 그 또한 극히 어려운 일이라 어쩔 수 없소. 바라노니 낭자도 독수공방獨守空房,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밤을 지냄을 설워 말고 기다리면 머지않아서 서로 만나 반가운 정회를 풀 수 있으리이다. 녹양춘풍에 뜬 해는 어디로 가느뇨. 오직 내 몸에 날개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오. 하고 싶은 말은 천 날을 지새워도 못다 할 것이로되, 편지 한 통에 다 쓸 수 없어 이만 줄이오. 그럼 부디 평안하게 잘 있으시구려.’

정씨가 편지를 다 읽고서 손주딸 춘앵을 어루만지며 통곡하여 하는 말이,

“슬프다. 어린 네가 어미를 잃고 어찌 살꼬? 야속하게 죽은 네 어미의 영혼이라도 너를 애처롭게 여길 것이다.”

하였다. 춘앵이 울면서,

“아이고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 아버님 편지 사연을 들으시고도 어찌 아무 말도 없으십니까? 우리 남매는 어머니 없이는 촌각寸刻인들 살기 싫사오니, 어서 빨리 어머니 계신 곳으로 데려가소서.”

하고 자지러질 듯이 복통하는 춘앵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백공 부부는 머지않아 선군이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겁도 나 상의하기를,

“며칠 후에 선군이 내려오면 필경 죽은 아내를 생각하고 저도 따라서 죽으려 할 테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밤낮으로 탄식했다. 하지만 한번 엎지른 물을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있으랴? 무죄한 며느리를 모해하여 스스로 자결하게 한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침식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 때 선군을 시종하는 노복奴僕, 사내종이 백공 부부의 기색을 알아채고 공손히 조아려 아뢰되,

“전번에 소상공小相公을 모시고 경성으로 가는 길에 풍산 땅에 다다르매, 주루화각朱樓畵閣에 채운彩雲이 영롱하고 연못에 연꽃이 만발하고 동산에 모란꽃이 피어 춘색을 자랑하는 곳에서, 어떤 미인이 백학白鶴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리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임 진사林進士 댁의 규수라 하였습니다. 소상공께서 그 미인을 한 번 바라보시고 흠모하고 배회 주저하시다가 돌아오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소인의 생각으로는 그 임 진사 댁의 규수를 찾아 성혼하시면 소상공이 기뻐하시고 필연코 숙영낭자를 잊으시지 않을까 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백공이 크게 기뻐하고,

“네 말이 옳다. 임 진사는 나와 친교가 있는 분이니 내 말을 괄시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선군이 이미 입신양명立身揚名하였으니 그 댁에 구혼하기도 쉽게 되었다.”

하고, 곧 백공은 차비를 차려 임 진사 집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백공이 임 진사 집을 찾아가니 임 진사가 반갑게 맞아들였다. 서로 인사가 끝난 뒤에 임 진사는 백공의 아들 선군이 득의得意한 경사를 치하하고, 주찬酒饌을 극진히 차려 백공을 편히 모시었다. 임진사가 백공에게,

“백형이 이처럼 누지陋地에 왕림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니 백공이,

“임형의 말이 잘못이요. 친구끼리의 심방은 예삿일인데 임형의 집을 누지라고 일컬으시니, 그런 말씀을 듣고 보니 도리어 서운하오이다.”

하고, 서로 정답게 웃으면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환담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다가 술이 서너 순배 돌았을 때 백공이 주인인 임 진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사실 내가 긴히 할 말이 있는데 임형은 내 청을 들어주겠소?”

하자 임진사가,

“그야 들을 만한 말이면 들어야지요.”

하였다. 백공이,

“실은 다름 아니라 우리 자식 선군이 숙영 낭자와 인연을 맺어서 금슬지락琴瑟之樂이 극진하여 자식 남매를 두었는데, 선군이 과거 보러 상경한 사이에 낭자가 홀연히 병을 얻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 뭡니까? 불쌍한 마음은 가이 없으나, 선군이 집에 돌아와서 낭자가 죽은 줄 알면 반드시 병이 날 것 같기에, 급히 규수를 널리 구하는 중이오. 그러던 중 듣자니 귀댁에 어진 규수가 있다 하니, 소제小弟의 가문이 비루함을 생각지 못하고 감히 귀댁에 구혼하고자 합니다. 모름지기 임형이 이 간곡한 청을 물리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오.”

하고 간청하였다. 임 진사가 백공의 말을 듣고 한동안 묵묵히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내게 천한 딸이 있으나, 영식令息, 남을 높여 그의 아들을 일컫는 말의 짝이 될 만하지 못하고, 또 지난해 칠월 보름날에 우연히 영식과 숙영 낭자를 보았는데, 낭자의 자태가 마치 월궁 선녀月宮仙女같이 아름다운 숙녀였습니다. 그러니 비록 소제가 백형의 뜻대로 허혼하더라도 영식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요, 그런 경우에 영식의 신세가 가련하게 될 것이니, 이 말씀은 천만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오.”

하니 백공이,

“그건 너무 겸손하신 말씀이외다.”

하고 굳이 재차 임 진사에게 청혼을 받아줄 것을 청하였다. 임 진사가 마지못하여 재삼 당부하고 허락하자, 백공이 기뻐하고,

“그럼 이달 보름날에 선군이 집에 돌아올 적에, 귀댁 문전을 지나게 될 것이니 그 날로 성례成禮함이 좋을 것 같은데 임형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하니, 임 진사가

“백형의 형편에 따를 터이니 좋도록 하십시다.”

하였다. 백공이

“지나친 부탁을 거절 안 하시고 모두 받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하며 백배사례百拜謝禮, 매우 고마워서 거듭거듭 사례함하고 임 진사와 하직하였다. 백공은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이 사연을 전하고 곧 예물을 갖추어서 임 진사 댁으로 보내었다.

그러나 부인 정씨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걱정을 거듭하다가 백공에게 물었다.

“임 진사 댁 규수와 성혼하게 된 것은 잘 되었지만, 숙영낭자가 죽은 줄 모르고 내려올 것이니, 집에 와서 낭자가 죽은 곡절을 물으면 무어라 대답하오리까?”

백공이,

“그 일을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으니 여차여차 말함이 좋겠소.”

하고 서로 약속하고, 선군이 내려올 날을 기다려서 풍산의 임 진사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르기로 하였다.

 

각설却說,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 앞서 이야기하던 내용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다음 이야기의 첫머리에 쓰는 말. 이 때 백선군은 벼슬을 제수 받은 후 근친의 말미를 얻어서 조정을 하직하고 안동을 향하여 내려왔다. 고향으로 내려올 제, 어사복두御賜按頭에 청사관대靑紗冠帶를 입고, 야대也帶, 문무과文武科에 새로 급제한 사람이 띠던 띠로, 한 끝이 ‘也’자 모양으로 늘어진 데서 온 이름를 띠고, 바른손에 옥홀玉笏을 잡고, 어사화御史花를 비스듬히 꽂고, 재인창부才人倡夫와 이원풍악梨園風樂을 벌여 세우고, 청홍개靑紅蓋를 앞세우고, 금안준마金鞍駿馬, 비단 안장과 훌륭한 말를 높이 타고 전후 추종이 옹위擁衛하여 대로상을 흥겹게 행진해 왔다. 길가에 모여 와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백선군의 용문에 오른 영광을 칭송하고 그 재기才氣 준수함을 부러워하였다. 이렇게 행차行次, 웃어른이 길을 가는 것을 높여 일컬음하여 사나흘이 지나니, 마음이 자연 서글퍼져 백선군이 잠깐 주점에서 쉬면서 문득 졸음이 와 눈을 감으니 비몽사몽非夢似夢간이라. 숙영낭자가 전신에 피를 흘리고 완연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선군의 옆에 앉더니 절통하게 울면서 호소하였다.

“낭군이 입신양명하여 영화롭게 돌아오시니 기쁘기 측량 없사오나, 저는 이미 박명薄命, 운명이 기구함하여 이 세상을 버리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되었나이다. 일전에 낭군의 편지 사연을 들으니 낭군께서 저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시나, 이것 역시 저의 연분이 척박하여 벌써 유명幽明, 저승과 이승을 달리하였으니, 구천의 혼백이라도 한스럽기 그지없사옵니다. 아무쪼록 저의 원통한 사연을 낭군께서 깨끗이 풀어 주시어 편히 눈을 감게 하여주옵소서. 저는 너무나 억울한 누명을 썼기로 아직까지 분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구천을 방황하고 있사오니 모름지기 낭군은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시시비비是是非非,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일를 가려 저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 주시면, 죽은 혼백이라도 깨끗한 귀신이 될까 합니다.”

하고 낭자의 모습은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선군이 놀라서 꿈을 깨어보니 전신에 식은땀이 축축하고 심신이 떨려 진정할 수가 없었다. 선군은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곡절을 헤아리지 못하여 다음날부터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인마人馬를 재촉하여 서둘렀다. 주야로 길을 달려서 여러 날 만에 풍산 마을에 이르러서 숙소를 정하였으나, 낭자 생각에 골몰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앉아서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밤이 점점 깊어 갈 무렵 문득 하인이 와서 이르기를,

“대상공大相公께서 오셨습니다.”

하였다. 선군이 즉시 밖에 나가 부친께 문안을 드리고 방으로 뫼시고 들어가서 가내 안부를 여쭈었다. 부친은 주저하다가 혼솔渾率이 무사하다고 거짓 알리고, 선군이 장원하여 높은 벼슬을 하게 된 사연을 물으면서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이윽고 선군에게 은근한 말로 권유하였다.

“장부가 현달顯達하면, 양처兩妻를 두는 것이 고금의 상례로 되어 있다하니 너도 이제 그렇게 함이 좋을 듯하구나. 들으니 이 마을의 임 진사의 딸이 매우 현숙하다 하므로, 내가 이미 구혼하여 임 진사에게 허락 받고 납채하였으니, 이왕 이곳에 온 터에 내일 아주 성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선군은 숙영 낭자가 현몽하여 불행을 호소한 뒤로 반신반의하고 마음을 진정치 못하던 차에 부친의 이런 말을 듣고 이상한 마음이 들어 추측하되,

‘부친께서 이렇게 내게 재취再娶를 권유하시는 것을 보니, 부인이 죽은 것이 분명하구나. 그래서 나를 속이고 임 낭자를 취하게 하여 나를 위로해 주시려는 게로구나.’

하고는 곧장 부친께 말씀을 드렸다.

“아버님 말씀은 지당하오나, 소자의 마음은 급하지 않사오니 후일에 정혼하여도 늦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 그 말씀은 지금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친은 아들의 성질을 잘 알기 때문에 다시 입 밖에 내지 못하고 근심 속에서 그날 밤을 지새웠다. 첫닭이 울고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선군은 행졸行卒을 재촉하여 안동으로 급행하였다.

이 때 임 진사가 선군이 마을에 가까이 왔음을 알고 선군의 숙소로 찾아오다가, 도중에서 이미 안동을 향해 떠나가는 선군의 행차를 만났다. 임 진사는 선군에게 장원급제한 것에 대해 치하하고 몇 마디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 뒤에 친구 백공을 만나 혼사에 관한 말을 꺼내니, 백공은,

“일이 여차여차하여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진행함이 좋을 듯하오.”

하고 어물어물 넘겼다. 이미 계획이 틀어진 백공은 당황한 마음으로, 서둘러 달려가서 아들의 뒤를 따라 안동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에 선군이 서둘러 집으로 향하니 하인들이 그 곡절을 모르고 의아해 하였다.

선군이 본집에 당도하여 정부인을 뵙고 그간의 안부를 여쭙고, 낭자의 거처를 물었다. 모친은 아들의 금의환향을 기뻐할 마음조차 없이 당장 아들이 묻는 말에 말문이 막혀 주저하는지라. 선군이 더욱 의아스럽게 여기고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 천만 뜻밖의 참경慘景, 끔찍하고 비참한 광경이 선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낭자가 가슴에 칼을 꽂은 채 누워 있지 않은가? 선군은 가슴이 막혀서 울지도 못하고 땅에 곤두박질하여 넘어졌다가 그만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춘앵이 동생 동춘을 안고서 내달아서 부친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통곡하였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이제야 오십니까? 어머니는 벌써 죽은 지 오래지만 아직도 염습도 못하고 저대로 있으니 차마 서러워서 못살겠습니다.”

그러면서 부친을 끌고 낭자의 빈소로 들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불쌍하신 어머니. 그만 일어나세요. 아버지가 이제 오셨으니 어서 일어나 반겨 주세요. 그렇게도 주야로 그리워하시더니 왜 꼼짝도 않고 무심하게 누워만 계세요?”

딸 춘앵의 울음소리를 듣고 선군이 비로소 참지를 못하고 한바탕 통곡하다가, 급히 부모 앞으로 나와서 숙영낭자가 왜 저토록 참혹하게 죽었는지 그 곡절을 물었다. 부모는 대답하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만 하였다. 그러나가 부친이 오열하면서 말하기를,

“네가 상경한 지 오륙 일 지나가, 하루는 낭자의 기척이 없기에 우리가 이상히 여기고 제 방에 가보니 저런 처참한 모양으로 누워 있더구나. 집안 식구가 모두 크게 놀라 그 곡절을 알려고 했으나 아직도 자세한 곡절은 모르겠구나. 다만 추측컨대 필시 어떤 놈이 네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밤중에 침입해서 겁탈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후 염습을 하려고 칼을 빼려고 해도 어느 누구도 능히 빼지를 못하고, 시체를 옮기려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으니 속수무책이라 그대로 두고 지금껏 너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런 불상사不祥事를 네가 알면 놀라 필경 병이 날까 하는 염려에서 알리지 않고, 미리 임 진사의 딸과 성혼하려고 한 것이니라. 네가 낭자의 죽음을 알기 전에 새 숙녀를 얻어서 새 정을 붙이면 네 아내의 불행이 좀 위로될까 생각했던 것이니, 너도 이왕지사 당한 불행을 너무 상심하지 말고 어서 염습하여 장례 지낼 생각이나 하여라.”

하였다. 선군이 이 말을 듣고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잠히 있다가 다시 낭자의 빈소로 들어가 대성통곡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노해서 집안의 모든 노비를 일시에 결박하여 뜰에 꿇어앉히고 보니, 그 중에 매월이도 끼어 있었다.

선군이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빈소로 들어가서 이불을 벗기고 보니, 낭자의 용모와 전신이 완연히 산 사람 같고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선군이 울음을 삼키면서,

‘이제 내가 왔으니 낭자는 부디 안심하라. 가슴에 박힌 칼이 빠지면 그 칼로 원수를 갚아 낭자의 원혼을 위로하겠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칼을 잡고 당기니, 그 칼이 가볍게 쑥 빠졌다. 그와 동시에 낭자의 가슴팍 구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나오며,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 세 번 울고 날아갔다. 그 뒤에 또 다른 파랑새 한 마리가 나오며,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 또 세 번 울고는 날아갔다. 그제서야 선군이 매월의 소행인 줄 알고, 분격하여 당에 나와 형구를 갖춰 놓고 모든 비복을 차례로 장문杖問하였다. 그러나 죄가 없는 비복이야 죽을망정 무슨 말로 승복할 수가 있으랴? 이에 매월을 끌어내다가 매 때려 문초하였으나 간악한 매월은 좀처럼 제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

“사실을 자백하지 않으면 계속하여 죽을 때까지 사정 두지 말고 매우 쳐라.”

추상秋霜같은 선군의 호령에 좌우 사령使令, 각 관아에서 심부름하던 사람들이 매월을 향해 사정없이 매질을 가하였다. 매가 백 장에 이르자 철석같은 몸인들 어찌 견뎌내랴? 살이 터지고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토록 모진 매월도 절반은 넋이 나가서 게거품을 내어놓으면서 빌었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개개승복箇箇承服하여 울면서,

“상공께서 숙영 낭자가 본실로 들어온 후로 저는 본체도 하지 않고 낭자만 총애하기에 질투심이 일어나던 차, 때를 타서 감히 간계로 낭자에게 누명을 씌워 그 원통한 마음을 풀려고 했습니다. 같이 공모한 자는 도리옵니다.”

하고 실토하였다. 선군이 크게 진노하여 즉시 공모한 불량배 도리를 잡아다 또 문초하니, 매월의 꼬임으로 뇌물을 받고 매월이가 시키는 대로 숙영 낭자의 방에 드나드는 외간 남자처럼 꾸며서 백공의 의심을 사게 한 죄 밖에는 다른 죄가 없노라고 자백하였다.

“에잇, 하늘이 무섭지도 않더냐? 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아!”

선군이 크게 노하여 칼을 들고 뜰로 내려와서 매월의 목을 한 칼에 베고,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어 낭자의 시체 앞에 놓고 두어 줄 제문祭文을 읽으면서 통곡하며 위로하였다.

“아아, 슬프구나. 성인군자聖人君子도 참수를 당하고, 현부열녀도 험한 구설을 만남은 고왕금래古往今來에 없지 않은 불행일지나, 이번 낭자같이 지원극통至怨極痛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으리요? 이것은 도시 나 선군의 불찰로 말미암아 생겨난 불행이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요? 오늘 그 원수는 갚았거니와, 한 번 죽은 낭자의 화용월태花容月態를 어디 가서 다시 만나보리오? 다만 나 또한 마땅히 죽어서 낭자를 따를 것이니, 부모께 불효가 되오나 어찌할 수 없소이다.”

선군은 제문을 다 읽고 낭자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다시 목놓아 통곡하였다. 그리고 매월에게 이용당하여 낭자의 음해사건에 가담한 불량배 도리를 본읍에 넘겨서 먼 절도絶島로 귀양 보내게 하였다.

 

이 때 선군의 부모는 며느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불행을 사실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가, 일이 이같이 밝혀지자 도리어 무색해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러나 선군은 도리어 화평한 얼굴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양친을 위로하고 묵묵히 염습제구를 준비하였다. 빈소로 들어가서 먼저 염을 하려고 하였으나, 여전히 시체가 요지부동이었다. 선군은 하는 수 없이 사람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서 빈소에 촛불을 밝히고 누워 탄식하면서 시체를 지키다가 문득 잠이 들어서 혼몽하였더니, 숙영낭자가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비단옷 차림으로 완연히 들어와서 사례하고,

“낭군의 도량으로 내 원수를 갚아 주시니, 그 은혜 결초보은結草報恩하여도 오히려 부족하옵니다. 어제 천상의 옥황상제께서 조회 받으실 때, 저를 불러 꾸짖어 말씀하시되, ‘네 선군과 자연 만날 기한이 있는데, 삼 년 기한을 어기고 앞당겨서 미리 인연을 맺었던 탓으로 인간에 내려가서 애매한 일로 비명횡사非命橫死하게 되었으니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한탄하겠느냐?’ 하시기에, 제가 백배 사죄하고, 옥제께 명을 어긴 죄는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오나, 선군이 저를 따라서 죽고자 하오니, 다시 한 번 저를 세상에 보내서 선군과 미진한 인연을 맺게 해 주십사 하고 애걸했습니다. 그러자 옥황상제께서 측은히 여기시고, 시신에게 분부하시기를, ‘숙영의 죄는 그만해도 족히 징계懲戒가 되었으니 다시 인간으로 내보내어 선군과 못 다한 인연을 잇게 하라!’ 하시고, 또 염라왕에게 분부하셔서, ‘숙영을 놓아 다시 인간이 되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염라왕이 옥황상제께 여쭙기를, ‘상제께서 그렇게 분부하시니 마땅히 영을 받들겠사오나, 숙영이 죽은 후에 죄를 벗을 기한이 아직 못되었사오니 이틀만 더 지낸 후에 인간 세상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하니, 옥황상제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남극성南極星을 불러서 저의 수한壽限을 정하라 하시니, 남극성이 팔십을 정하고 삼 인이 동일 승천케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옥황상제께 여쭙기를, ‘선군과 저 두 사람뿐인데 어찌 삼 인이 한날한시에 승천한다고 하시나이까?’하였더니, 옥황상제께서 ‘너희들 부부가 앞으로 자연 삼 인이 될 것이니라. 그 이상은 천기天璣를 누설치 못해 알려줄 수가 없노라.’라고 하셔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옥황상제께서 또 다시 석가여래를 불러서, ‘자식을 점지하라.’고 분부하신즉, 석가여래께서 삼 남을 정하였으니, 낭군은 아직 제가 죽었다고 상례를 지내지 마시고 며칠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고는 문득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선군은 꿈에서 깨어나 마음이 창망하여 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마음이 극히 편치 않은 채 수 일을 기다렸다.

하루는 선군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낭자의 빈소에 들어가 보니, 꼼짝도 하지 않던 낭자의 시체가 옆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선군이 놀라서 시체를 만져보자 온기가 완연하여 생기가 돌고 있었다. 선군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 부모를 청해 그 신기한 사실을 알리고, 한편으로는 인삼을 달여서 입에 흘려 넣으며 낭자의 수족을 주물러 주었다. 그러자 이윽고 숙영낭자가 눈을 부시시 뜨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이것을 본 시부모와 선군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때 춘앵이 동춘을 안고 모친 시체 옆에 있다가 그 회생하는 기색을 보고 한편으로 희한하게 생각하여 모친의 품에 와락 달려들어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어머니! 날 좀 보세요. 그동안 어찌 그리 오랫동안 꿈속에만 계셨나요?”

춘앵은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낭자는 딸의 손을 붙잡고 그간의 사연을 물었다.

“네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느냐? 그리고 너희 남매는 그동안 잘 있었느냐?”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이 엄청난 기적 앞에서 한 방의 상하 모든 사람이 놀라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겨함은 이를 말이 없고 원근 사람들도 이 소문을 듣고 다 와서 치하하므로 이로 말미암아 측량키 어려웠다.

이러구러 수일이 지나서 잔치를 베풀어 친척과 빈객을 원근 없이 모두 청하여 즐거워하였다. 재인을 불러서 재주를 구경하며 창부를 불러서 노래를 시키니 풍악소리가 하늘에 멀리 울려 퍼졌다.

 

각설却說,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 앞서 이야기하던 내용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다음 이야기의 첫머리에 쓰는 말. 이 때 선군과 정혼한 임 진사 집에서는 숙영 낭자가 회생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납폐를 돌려보내고 다른 곳에 구혼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임 낭자가 그 기색을 알고 부모에게 말씀드리기를,

“여자로서 한 번 혼사를 정하고 예물을 받은 이상 그 집 사람이 분명하옵니다. 백선군 도령이 상처한 줄 알고 부모님께서 그와의 정혼을 허락하셨으니, 이제 숙영낭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여 파혼하는 것은 부당한 줄 아옵니다. 국법에 양처兩妻를 두지 못하도록 금하면 모르오나, 그렇지 않는 한에는 맹세코 다른 가문으로는 시집을 가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혼담은 꺼내지도 마십시오.”

하였다. 임 진사 부부가 딸의 이런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딸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가문에서 신랑감을 널리 구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임 낭자가 다시 부모님께 찾아와서 말하였다.

“한번 말씀드린 것을 어찌 번복하오리까? 소녀의 혼사로 이렇게 걱정을 시켜 드리게 된 것은 소녀의 팔자가 기박한 탓이오니, 비록 여자라도 말은 천금같이 중하매 이미 금석같이 마음을 먹은 대로 평생토록 시집가지 않고 부모님 슬하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일생을 편안히 지내는 것이 원이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혼사를 의논하시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비록 불효가 될지라도 차라리 한 지아비를 좇아서 죽은 이비二妃, 순舜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의 자취를 따르고자 하오니 부모님은 이제 저의 혼사일은 단념하시고 소녀를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하고는 굳은 정절의 의지를 밝혔다. 임 진사 부부가 이 말을 듣고 도저히 그 뜻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아 비록 더 이상 의논은 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근심이 아닐 수 없었다.

임 진사가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백공을 찾아보고 며느리 숙영낭자의 회생을 축하해 주고 오겠다고 하고서, 백공을 찾아갔다. 백공이 임 진사를 반갑게 맞아 서로 마주 앉았다. 임 진사가 백공에게,

“예로부터 한 번 죽은 사람은 다시는 태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백형의 며느리가 다시 살아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로 희한한 일입니다. 백형의 복 받음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산 자식을 죽이게 생겼으니 똑같은 사람인데 화복禍福이 어찌 이렇게 불평등하단 말입니까?”

하고 처연하게 말했다. 백공이 깜짝 놀라서 그 연고를 물으니 임 진사가 자기 여식의 그간 사정을 하나 하나 말했다. 그러자 백공은 그 모든 것이 자기의 책임인지라 깊이 사죄하고, 또한 임 낭자의 굳은 절개가 기특하여 칭찬하였다.

“과연 임 진사의 따님다운 마음씨로군요. 그 규수의 절개가 그렇게도 굳거늘, 그런 숙녀의 일생을 우리 선군 때문에 망친대서야 되겠습니까? 이러지도 모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이 모두가 나의 경솔한 탓이오니 아무쪼록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오.”

백공은 임 진사에게 거듭거듭 사과하였다. 이 때에 아버지 곁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선군이 임 진사에게 공손히 여쭈었다.

“귀 소저의 금옥 같은 말씀을 듣자오니 고인古人이 부끄럽지 않으나, 사정인즉 난처하옵니다. 국법에 아내가 있고 취처함을 다스리는 율이 있으니 의논할 것이 안 되고, 거사가 양처를 두는 법이 있지만 귀 소저가 어찌 남의 부실副室이 되시겠습니까? 형세가 이렇고 보니 이 모두 우리 탓이라 죄스럽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임 진사가 탄식하면서,

“법에 양처를 두어도 무방하다고 할진대 설사 부실이 된들 어찌 사양하겠소마는, 이미 없는 일을 더 이상 의논하여 무엇 하겠는가?”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돌아갔다.

 

차설且說,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 앞서 이야기하던 내용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다음 이야기의 첫머리에 쓰는 말. ≒각설. 선군이 숙영낭자의 침소에 들어가서 임 낭자의 사정을 말한즉, 숙영낭자가 임 낭자를 가상하게 여기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규수의 일념이 그러하여 세상을 등질 지경까지 가게 한다면, 한 여자의 일생을 그르치는 죄악罪惡이 되고 낭군님의 죄악은 또한 처의 허물이 될 것이오니, 모름지기 낭군은 제 생각만 하지 말고 그 같은 여자의 불행을 구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자 선군이 속으로 기뻐서,

“그게 무슨 일이요?”

하였다. 숙영낭자가,

“옥황상제께서도 삼 인이 같은 날 승천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도 필연 하늘의 뜻입니다. 이미 천정 연분이니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낭군은 모름지기 우리 집의 전후 사정과 임 낭자의 모든 사정을 자세히 주상께 상소하십시오. 그러면 주상께서 반드시 가상히 여기셔서 특별히 사혼賜婚하실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성인이 권도로 행하신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도리어 양가의 영광이 될 것이온즉, 세상에서도 양가의 미담美談을 칭송할 것이옵니다. ”

하였다. 이에 선군이 깨달아 응낙하고, 낭자의 손을 잡고 치하하니,

“상감께 청하는 것이야 뭐 그리 어려울 게 있겠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낭자가 임 낭자를 구원하는 넓은 아량이니 미담의 주인공은 바로 낭자이외다. 하여 내가 낭자를 더욱 존경하오.”

하였다. 며칠 후 선군은 행차를 준비하여 상경하였다.

상경한 뒤에 옥궐에 문안하고 수 일을 쉰 후에, 어전에 들어가 상감께 문안 인사를 드린 후 곧 숙영낭자와 임 낭자에 대한 얘기를 일일이 적어서 주상께 상소문을 올렸다. 주상이 선군의 상소문을 보시고 즉석에서 크게 기뻐하시고,

“숙영 낭자의 아름다운 관용의 덕은 천고에 드문 일이니 정렬부인正烈夫人의 직첩職牒, 조정에서 벼슬아치에게 내리던 임명 사령서을 내리라.”

하시고,

“임 낭자의 절개 또한 아름다우니, 특별히 백선군과 혼인하게 하고 숙렬부인熟烈夫人의 직첩을 내릴 것이니라.”

하시고는, 이 사실을 만조백관滿朝百官,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에게 널리 알리시었다.

백선군은 사은謝恩하고 다시 특별 휴가를 얻어 바삐 집으로 돌아와서 이 사연을 임 진사 댁에 알렸다. 임 진사 댁에서 생각 밖의 일이라 기뻐하고 감격하여 택일 성례하니 신부의 화용월태花容月態가 가히 숙녀가인이었다. 신부 임 낭자는 선군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와 시부모님을 효로써 모시고 낭군을 공손하게 받들면서 숙영낭자와 더불어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이 화합하여 항상 떨어지기를 서운해하였다.

이렇게 백 씨白氏 집안이 화락和樂하고, 부귀富貴를 누림에 결코 남을 부러워함이 없었다. 백공 부부가 함께 천수를 누리고 팔십을 향수享壽, 오래 사는 복을 누림하여 건강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니, 백선군의 부부 세 사람이 심히 슬퍼하며 선산에 안장하여 시묘侍墓하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빨리 흐르는 동안에 정렬부인은 사남 일녀를 낳았고, 숙렬부인 또한 삼남 일녀를 낳으니, 그 구 남매는 모두 부풍모습父風母襲하여 하나 하나가 다 옥인군자玉人君子요 현녀숙완賢女淑婉이었다. 차례로 남가여혼男嫁女婚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가세가 부유하여 만석꾼萬石君, 벼 만 섬 가량이 수확될 만큼 넓은 땅을 가진 부자의 이름을 얻고 대대로 복록이 무궁하였다.

하루는 큰 잔치를 베풀고 자녀와 손자를 데리고 사흘을 즐기더니, 홀연히 상운祥雲이 사방을 둘러싸고 용이 우는 소리가 진동하더니, 한 선관仙官이 내려와서,

“선군아, 인간의 재미가 어떠하뇨? 인간의 재미도 좋으려니와 천상의 즐거움이 또한 그보다 못하지는 않으리라. 그대 부부 삼 인이 승천昇天할 기약이 바로 오늘이니, 지체하지 말고 따르도록 하라.”

하고 백선군 삼 인의 부부는 함께 일시에 승천하니 이 때 향년 팔십이었다.

자손들이 공중을 우러러 보며 망극애통해 하고 허관虛棺을 꾸며서 선산에 안장하였다. 그 일이 기이하므로 여기에 대강 기록하였다.

출처 : 꾸마이 책에 빠지다
글쓴이 : 꾸마이 원글보기
메모 :

숙영낭자전 목판본 필사 과제를 위한 텍스트...

ㅠㅠ 한 학기동안 꼬박 새벽까지 썻던 기억

생각해보면... 이 때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과제를 해볼것인가

그래도 하고 나니 뿌듯하고 한자를 익히고 고전어에 도움이 되었다.

 

하아... 드디어 숙영낭자와 헤어졌다... 필사는 힘들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