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우리나라 근대문학 작가들의 이야기를 해도 되나? 1

나비girl 2016. 6. 3. 16:45

http://oeker.net/bbs/board.php?bo_table=garden&wr_id=1147629

나냔은 이쪽 전공자라능..학부 때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어
평생 이걸로 밥 벌어 먹고 살 생각하고 공부하는 냔이야

나냔은 학생들이 문학 수업을 지루해 하거나 어려워 할 때 그 작가의 뒷이야기를 해 주면 좀 더 집중할 수 있을까 해서
내가 학부 때 들었던 이야기나 책을 통해 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써 먹는 스타일이야
그럼 확실히 애들이 좀 더 집중하고 빵빵 터지고 그래

몇 개만 우선 얘기해 볼겡..
만약 반응이 나쁘지 않으면 내 모든 걸 털어서 꺼내 놓을게

우선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시작은 개화기 이후로 보고 있어
개화기 상상가지? 얼마나 혼돈의 카오스일지.. 우린 아직 상투 틀고 불편한 한복 입으면서 공자왈 맹자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코 높은 애들이 오더니 양복 입어 보라 그러지 머리 자르라 그러고 이러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그래서 위정척사파니 개화파니 나오게 된 거야

이렇게 조선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외국 문물로 인해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근대사의 뼈아픈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거지
좀 날고 긴다는 집에서 자란 애들은 죄다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왔어 근데 돌아오니까 헐 할 일이 없네? 미치겠네?
그래서 빡쳐서 그걸 문학으로 남긴 대표적인 작가는 바로 염상섭이야 만세전 같은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동경에서 경성으로 들어오는 기차에서 조선의 열악한 환경을 보면서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라고 까지 표현해
아무튼 이렇게 긴 이야기는 시작돼

1.김동인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해 어마어마한 콤플렉스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어
이광수가 무정이니 뭐니 써대면서 자꾸 계몽하려고 드니까 김동인이 화가 났어
그래서 에이씨 문학이 뭐 효용적 가치만 있니? 문학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야!!!!!! 썅!!! 하면서 탐미주의, 유미주의 문학을 쓰기 시작해
광염소나타 광화사 등이 그러한 예야
그리고 30년대 들어 이광수가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해
이광수가 '단종애사'라는 소설을 쓰니까, 이에 발맞춰서 김동인은 '대수양'을 써
이외에도 많아 암튼 김동인은 그냥 이광수가 하는 게 다 싫은 거야 무조건 반대로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가 해방하고 나서 해방공간에서 이광수를 졸라 까는 소설을 쓰지.
그게 바로 '반역자'라는 소설이야

김동인의 이런 디스 실력은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에서도 발휘 돼
우리나라 상징주의 문학의 시초를 알린 김억이 염상섭을 겁내 싫어했거든?
그래서 김동인한테 부탁을 하지 "야 쟤 디스하는 소설 좀 써 봐 너 그런 거 잘하잖아 ㅇㅇ" 이라고
염상섭이 원래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려움 모르고 자랐기도 했고 성생활이 굉장히 문란했다고 해(염상섭의 아내도 그랬다는
소문이..) 그래서 그걸 보기 싫었던(사실은 문학적으로 열등감?을 느꼈던) 김억이 김동인한테 부탁한 거지
그래서 김동인은 좋다고 염상섭을 까는 소설을 써
내용 읽어 봐 재밌어 ㅋㅋㅋㅋ 작품 주인공이 자기 아내가 딴 사람 애 가진 걸 알면서도 의사인 친구한테 와서 자꾸
"야 어디가 닮았고 어디가 닮았고~~ 주절주절 블라블라" 하니까 의사인 친구가 "그래 발가락이 닮았다" 라고 시크하게 한마디 던져 ㅋㅋ
암튼 이런 소설을 썼는데 그냥 조용히 꺌꺌꺌 미친 ㅋㅋㅋㅋ 이러고 넘어가면 되는데

저게 염상섭을 까는 소설이라는 게 밝혀졌지
누구에 의해서? 저걸 부탁한 김억에 의해서 ㅋㅋ 지가 지입으로 다 얘기하고 다님
암튼 그래서 김동인이랑 염상섭은 그대로 빠이빠이 안뇽 했어

근데 그렇지만 김동인은 진짜 대단한 작가야 천재지


2. 김유정

우리가 아는 할매의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김상중의 명대사 있지 "감자 좀 쪄줄래?"
이건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서 시작된 모티프야 점순이년이 주인공 '나'한테 감자 찐 거 먹을래? 라고 물었는데 그거 안 먹는다고 그랬다가
난리남 지금 같음 연애방 불판 터짐...
그래서 고추장 먹인 닭들을 싸움 붙이고 난리도 아닌.. 이런 소설을 쓴 작가가 바로 김유정이야
김유정은 30년대 농촌 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어 농민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문학성을 인정받은 작가지
문학 교육에서 '웃음으로 눈물닦기'라는 말이 있어 민중문학 그 중에서도 판소리, 마당극 등을 거론할 때 쓰는 말이야
인생 살기 팍팍해 죽겠는데 그래도 웃어야지 웃으면서 살아야지 하면서 그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걸 의미해

암튼 각설하고,
김유정 작가가 흠모하던 여인이 있었어 그 분은 바로 기생 박록주..
당대 최고로 잘나가던 기생인데, 이 기생이 김유정을 안 받아 준 거야.. 그래서 김유정은 혈서도 써 보고 오랫동안 연서도 써 보냈지만
끝끝내 답은 오지 않았어..
차가운 돌 위에 앉아서 연서를 많이 쓴 탓인지 결국.. 치질에 걸려 죽었다는 소문이 있어..(장난 아님)

그리고 이상도 폐결핵이었던 거 아니? 그래서 김유정한테 자꾸 편지 보내서 동반 자살하자고...
역시 이상의 이상한 시는 그냥 나온 게 아님......
김유정의 공식 사인은 폐결핵이지만 치질도 큰 몫을 했다는 소문이..

그리고 김유정은 우리 외커냔들처럼 통닭 덕후였다고 해
김유정 소설에 보면 닭들이 많이 나오잖아 그게 다 닭을 정말정말 사랑해서 그런 거라눙...
'오늘도 우리 수탉이 또 쪼이었다..'이런 구절은 다 그런 데서 나온 거임 ㅋㅋㅋ

실제로 김유정이 결핵에 걸렸을 때 밖에서 닭소리가 나니까 내가 돈이 있으면 저 닭을 먹고 보신해서 털고 일어나겠다!! 라고 한 적이 있어

암튼 김유정 작가의 해학성이 깊은 소설은 현재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리얼리즘 문학관의 견해에서 봤을 때도
카프의 그 어떤 작가보다 대단한 작가야

3. 윤동주

윤동주 같은 경우는 잘생긴 외모 덕분에 백석과 함께 외정의 대표적 시인이지? 정말 잘생겼어
학교 문학교육에서는 자기 성찰과 소극적 저항 의지라고 하면서 그를 설명하는데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가엽고 대단하신 분이야
윤동주도 역시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현재의 연세대 영문과를 다녔어. 윤동주의 제일 친한 친구(후배)는 정병욱이라고 고전문학의
대가 중 한 분이셔.. 이것 관련해서 kbs '한국의 유산'에도 나왔어.
짧게 얘기하자면 정병욱 선생이 일제 말 징집되면서도 끝끝내 윤동주의 작품을 지켜서 유고시집을 내 준 분이시지
암튼 윤동주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그러다 방학을 맞아서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는데 이때 사상범으로 일본 헌병
에게 붙잡히게 돼 그래서 독립운동 혐의로 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돼(일본에서 윤동주 문학제 열리는 거 알징?)
그리고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1945년 2월에 타계하시지
우리가 다 알고 있듯, 그리고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동생과의 서신 내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일제의 생체 실험으로 인해 타계
하신 게 맞는 것 같아
암튼 이 일본 유학을 같이 간 인물 중에 장준하, 문익환이 있어 친한 친구 사이야

문익환이 윤동주의 죽음을 겪고 후에 시를 한 편 남겨

-장준하의 무덤 앞에서-

동주야

너는 스물 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가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향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김상진 박래전만이 아니다
너의 '서시'를 뇌까리며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후꾸오까 형무소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속에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너의 피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라는 시야. 나는 이 시를 보면 너무 슬퍼서 할 말이 없어. 정말 죄송하고..

암튼 이런 이야기들이 있어. 참고로 문성근은 문익환 아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