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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현진건
부제: 내가 바로 동아일보 사회부장이다.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를 떼어내고 내 보냈다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었소!
우리에게 츤데레 '김첨지'라는 인물을 만들어준 바로 그 분이시다 ohohohohohoho 나는 현진건 작가 굉장히
좋아해!
거기다 나는 츤츤데레데레한 사람을 좋아해서 나에게 영원한 이상형은 바로 김첨지님이시당...
이
오라질년!!!!!!!!!!!으로 유명한 김첨지를 탄생시킨 바로 현진건.
일제 치하 식민지 조선의 현실 속에서 억압 던 우리 민족의 수난을
사실적 묘사로 잘 풀어낸 작가야. '비판적 리얼리즘'을 잘 구현한 작가로 평가 받지. 대표작으로는 운수 좋은 날, 빈처, 술 권하는 사회,
B사감과 러브레터, 운현궁의 봄 등이 있다요!
내 생각을 얘기하면 현진건은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유쾌하고 호탕한 사람이었지만
비극적인 시대를 비극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당 뿅 ㅋㅋ
그는 꼭 암탉처럼 살이 포동포동 찌고 역시 키가 작달막하게 걸음걸이조차 씨암탉처럼 아기죽아기죽하였다. 살결도 희고 맑으며
귀공자 타입으로 예쁘장스러운 미남이었다. 나를 툭 치고 껄껄 웃고는 내가 귀엽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눈매는 여자처럼 매력 있고 사람 반할
만하다. 술이 취하면 그 예쁜 눈이 게슴츠레해지고 바르르 떤다. 눈썹은 시커멓고 굵어서 수(장수)를 할 줄 알았는데 웬일인가. 입도 조그마하고
예쁘장스러워 언뜻 여자 같기도 하다. 면도를 여러 날 아니하면 수엽이 겅성드뭇하게 나는데 그게 까맣지 않고 노르스름한 것도 애교다. 그러고 보니
눈동자도 좀 노르스름한 것 같다. 춘원(이광수)의 눈동자가 그러했다.
외모가 그렇게 씻은 배추라도 통통한 호배추같이 깨끗한 만치 마음씨도
고결하다. 경상도 태생이라 그런지 대나무같이 곧고 악과 불의와는 거리가 먼 군자다.
와 진짜 대박 오글 거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웬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쓴 글인가 싶지?
아닙니동 소설가 방인근이 현진건을 회고하면서
쓴 글이야..
나 저거 쓰다가 진짜 미칠 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귀공자 얼굴을 가진 현진건 얼굴 함
보고 가실게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i40.tinypic.com/eaidc0.jpg" >
난 사진 보고 눈썹
문신 해 드리고 싶다.. 생각했는데.........원래는 눈썹이 시커멓고 굵었댕...사진빨 안 받으시는 듯...
암튼 현진건은
조선시대 대대로 역관을 역임한 집안이었어. 따라서 의식면에서 남들에 앞서 있었고 그런 이유로 개화기를 맞아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어.큰형이 러시아 무관이고, 둘째형은 변호사고, 셋째형은 독립운동가였어.
이정도면 상상가지? 와 중인 출신이지만
대단한 가문의 사람이구나..
그리고 당대 지식인들 대부분이 영문과를 전공한 거에 비해 현진건은 독립 운동하던 형을 찾아 상해로
가서 독일어를 전공해.
자전적 소설인 '빈처'에 보면 자신의 지식에 대한 욕구를 이렇게 얘기하지.
육년 전에(그때 나는
16세이고 저는 18세였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아니 되어 지식에 목마른 나는 지식의 바닷물을 얻어 마시려고 표연히 집을 떠났다.
광풍에 나부끼는 버들잎 모양으로 오늘은 지나(중국), 내일은 일본으로 굴러다니다가 금전의 탓으로 자식의 바닷물도 흠씬 마셔 보지도 못하고
반 거들충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하고 말이지. 근데 이런 방랑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현진건의 문학을 만드는
밑거름이 돼.
1926년 잡지 <<개벽>>에 현진건은 '조선혼과 현대 정신의 파악'이라는 비평문을
발표하는데, 잠깐 살펴볼게.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치 못하는 것이다. 달나라의 소요도 그만둘 일이다. 구름바다의
유희도 그칠 일이다. 조선 문학인 다음에야 조신의 땅을 든든히 서야 할 줄 안다.
라는 이야기를 해. 결국 우린 현재 사회와
현실을 똑바로 보고 제대로 반영해서 그려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조선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야. 이러한 방법으로 현진건은 당대
현실을 비판하고 맞서는 거야. 왜 현진건을 사실주의 작가라고 하는지 알겠지? 당장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전적 소설을 많이 써.
그리고 그 소설 안에는 당대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아니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학사 쓰고 나서 쓰다보니 자꾸
뭔가 구구절절 쓸데 없는 내용까지 쓰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져.............................................
암튼 현진건은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했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선수단으로 참가했던 손기정 선수가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지? 얼마나 기뻐. 비록 일본 선수단으로, 일장기를 달고 출전했지만 그 누가 뭐래도 우리 조선인인 손기정이 금메달을
땄는데! 조선 사람들에겐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 기쁨이었어.
여기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해. 바로 '일장기 말소 사건'.
동아일보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을 내 보낸 거야. 난리났지. 일본 새키들이 가만히
있겠어? 바로 잡아 들였어.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을 당하고 당시 사회부장이었던 현진건은 감옥에 갇혔어.
어떻게 보면 일장기를
지우고 내 보낸 게 현진건의 의지가 아닐 수 있잖아? 싶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기자가 기사를 내면서 윗사람에게 보고도 안하고 내 보낼 수
있었겠어. 현진건이 그러라고 허가해 준 것 아닐까?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할 근거가 있어. 아까 셋째 형이 독립운동가라고 했었잖아.
근데 그 형이 체포돼서 조선으로 돌아온 후 감옥살이를 했어. 무려 3년이나 옥살이를 한 형은 출옥하고 난 후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죽었어. 그리고
형수도 형을 따라 자살을 한 거야.. 이렇게 비극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난 후로 현진건은 일본을 더더더더 증오하게 됐어.
적극적으로
항일 운동을 한 건 아니지만 일본인과는 일절 만나지 않고 조선인들하고만 친목을 쌓으면서 살았대. 물론 말년에 친일성향의 잡지에 글을 실은 적도
있지만, 많은 문인들이 변절하고 일본에 빌붙었을 때 끝까지 일제에 타협하지 않은 문인이 아닌가 싶어.
그리고 현진건은 애처가로도
유명했어! 처가가 경주에서 알아주는 부호였지만 자신은 너무 가난한 거야. 그래서 처가에서 보내준 돈으로 생활을 이어갔는데 처가에서도 아내한테
싫은 소리 하고 그랬나 봐. 배운 놈이 돈도 못 벌어온다고 ㅋㅋㅋㅋ 여자 팔자 뒤웅박이라고.. 그게 바로 소설 '빈처'에 드러나지.
현진건의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현진건이 아내를 대단히 사랑했다고 회고해. 아내가 현진건보다 두 살 연상이었는데,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아내만을 사랑했대. 문인들과의 술자리에 가면 기생이 옆에서 치근덕대도 허허실실 웃으면서도, 절대로 범접할 수 없도록 쌀쌀맞은
표정으로 대꾸했다고 해. 누구들처럼 난잡하지 않은 생활을 한 거지.. ㅋㅋ
현진건이 술을 정말 좋아해서 술만 마셨다 하면 옷이 더러워
져서 돌아와도, 아내는 불평 한마디 안했대. 둘이 서로를 정말 사랑했던 게 보이지? ㅋㅋ 그리고 소설 쓰고 나서는 아내한테 읽어주고 그랬대..
와 낭만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런 남자 만나고 싶으요............ㅋㅋㅋㅋ
그리고
염상섭처럼 현진건도 대단한 주당이라고 알려져 있어. ㅋㅋㅋㅋ 진짜 술먹고 개차반 될 때도 있었나 봐. 저인가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있을
때 회식을 했는데 무려 사장님께......."이놈아 먹어! 먹으라고!!!" 하고 술을 권하면서 싸...........대기도 때렸다나
봐.................ㅋㅋㅋㅋㅋㅋ 진짜 사회생활 저따구로 하면 당장 짤릴텐데................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
송진우였는지 김성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사장님을 때렸잖아요 ㅠㅠ 그게 다 했잖아요.............ㅋㅋㅋ
근데
신기한 게 안 짤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당시에 현진건이 엄청 인정받는 문인이자 기자였어서 사장도 쉽게 못 짤랐나
봐..ㅋ.ㅋㅋㅋㅋ하하...
그리고 술에 관한 일화를 하나 더 이야기 하면 어느 날 한 독자가 신문에다 기고를 한 거야. '만일
금주법이 시행된다면?' 하고 말이지. 그래서 현진건이 답변을 하는데 개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문사에서도 다른 사람 다 제치고
저 질문에 대답하라고 현진건한테 떠 넘긴 거지
답변은 이래.
돈이 없어서 못 먹으니 차라리 끊어 버리는 것도 나을
듯 싶어서 벌써부터 끊으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날 보고 애주가로 인증하니 참 딱한 일입니다. 우선 귀사에서도 많은 인사를 제쳐
놓고 나에게 물어 보시는 것은 내가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구태여 물어보시는 줄 암니다. 혹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배운 재주라 그렇케
쉽게 버릴까 하는 것도 의문은 됩니다. 정, 먹고 싶으면 카포네 노릇이나 해야 먹게 될 줄 압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왜케 웃기지? 나만 웃기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래..
이런 삶을 살았던 현진건은 말년에 폐결핵으로
돌아가셔. 원래는 경기도 시흥 어디에 매장됐었는데, 후에 개발때문에 묘소가 사라져서 그 유해는 한강에 뿌려져..
운수 좋은 날의
한 구절을 들고 마무리 할게.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 하니, 왜 먹지를 못 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아................. 오늘 백석, 정지용도 하려고 했는데 벌써 현진건이
이만큼 양을 잡아 먹었어..................ㅠㅠㅠㅠㅠ
그럼 오늘은 처절하게 슬픈 삶을 살다간 사람 특집으로 한 명 더
모셔볼게
시대가 뒤죽박죽하더라도 이해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지금 술 취한 거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맘이야 내 맘
내 자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왠지 슬픈 이야기를 하고 싶어...
8. 손창섭
부제: 나는 잉여인간이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그게 곧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지 (좀 오글거린다......)
외정냐니들 일본 여행 가 본 적 있어? 일본 가면 거리에서 사람들이 무가지나 티슈 등등 나눠주잖아. 물론 요즘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그 무가지나 티슈를 나눠주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아는 그 손창섭 작가가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어?
1973년
지긋지긋한 삶을 마무리하려고 손창섭은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떠났어. 왜 돌연 절필하고 일본으로 가 버렸을까? 너무 지쳐서 모든 걸 버리고 싶었던
거 아닐까..?
손창섭은 일본으로 건너간 후 한 공원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무가지를 나눠 줬어. 성경이나 불경, 동양의 고전
등에서 추려낸 경구를 담은 무가지였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지혜를 담은 좋은 구절들을 추리고 그걸 손수 인쇄해서 공원이나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줬어. 모든 비용은 손창섭의 몫. 그걸 받는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대체 저 사람은 저걸 왜 주는 걸까?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아무도 몰라. 왜 돌연 손창섭이 일본으로 떠났는지. 그리고 왜 그곳에서 저런 행동들을 했는지.
손창섭은 해방
이후 단편 소설을 발표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했어. 전쟁으로 인해 뒤틀린 한국 사회를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주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내팽겨쳐진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그런 작품들을 많이 썼어. 소설에서는 주로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그건 바로 비정상적인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였을 거야.
손창섭의 소설 '비오는 날', '생활적', '잉여인간' 등을 읽어보면 나를 휩싸는 치명적인 우울함을 느낄 수
있어. 나는 실제로 학부 때 손창섭 작품론을 발표하면서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는 진짜 눈물을 흘렸다... 진짜 한 일주일은 후유증에 휩싸인 듯..
하지만 이건 곧 전후사회의 현실 그 자체였어. 그리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어.
손창섭은 왜 이런
소설들을 썼을까?
손창섭의 작품 '신의 희작'을 통해서 살펴볼게. 도입부에 '시시한 소설가로 통하는 S -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삼류 작가 손창섭 씨' 대목이 나와.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맞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는 거야. 이 작품에서 주인공 S는 어릴 때
어머니가 몸 파는 걸 직접 보고 자랐어. 이때문에 보복 심리, 인간 혐오증, 거세 공포증, 야뇨증 등에 시달리게 됐대. 이는 결국 자살미수,
섹스 콤플렉스, 동료에 대한 폭력적 행위로 나타나게 됐어.
자전적 소설인 신의 희작에도 나오지만 손창섭은 어릴 때 어머니가 몸
파는 걸 직접 봤다고 해. 그때문에 인간을 혐오하게 되고 항상 공포에 시달렸대. 이러한 인간 불신의 감정과 여자에 대한 성적인 불능 등이 소설에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어.
정말 마음 아프지 않니?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손창섭 작가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을
뚝뚝.......torrrrrrrrrrrrrrr...
이러한 경험들은 자신이 인간인 것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켜.
하구많은 물건 가운데 하필 인간으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일찍이 나는 인간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도 자신을 느껴
본적이 없다. …… 나는 염소이고 싶다. 노루이고 싶다. 두더지이고 싶다. 그나마 분에 넘치는 원이 있다면 차라리 목석이노라. 나의 문학은
목석의 노래다. 목석의 울음이다. 목석의 절규이다.
이처럼 손창섭은 인간에 대한 불신, 혐오, 무기력증이 소설을 통해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작가였어.
어쩌다 이렇게 슬픈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이런 고통을 작품 '신의 희작'을 통해서 토해낼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무엇때문에 조국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 좀 더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
나 너무 우울 터지는 이야기만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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